지구 반바퀴를 건너온 편지

나는 무리뉴 감독을 좋아한다. 그 시작의 순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나의 어린 날들을 회상해보면 중학교 시절, 그 해가 2015년 봄 쯤 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분데스리가나 리그앙 같은 용어들이 내게는 낯선 것들이었다. 축구팀이라 하면 단순히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뮌헨 정도밖에 몰랐다. 해외축구가 EPL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시기였기에 친구들과 축구 이야기를 나누려 네이버 스포츠를 들어가서 그 날의 경기를 챙겨보곤 했다. 그면서 자연스럽게 스포츠 뉴스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첼시를 이끌며 리그를 우승시킨 무리뉴의 인터뷰들을 보면서 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무리뉴는 그라운드 안팎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내게는 멋있어 보였다. 그의 축구에 대한 진심이 그야말로 종목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시절 그는 맨유와 토트넘을 거쳐 그라운드 안 밖으로 손흥민과의 미친 듯한 캐미를 선보였는데, 한국인으로써 그런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그를 싫어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수백만 명의 축구 팬들과 마찬가지로 무리뉴를 모니터 속에서 응원할 뿐이었지만, 그의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어느 날,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가 'TTM'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TTM은 유명한 스포츠 선수나 배우들에게 가벼운 편지와 함께 사진을 보내 싸인을 요청하는 일종의 팬문화였다. 몇 천 원의 작은 비용으로라도 그에게 팬심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기쁨을 느꼈다. 그래서 곧바로 사진을 인화하고, 봉투와 A4 용지 두 장분의 편지, 그리고 직접 그린 그림까지 동봉해 당시 그의 팀이었던 AS 로마의 한 훈련장 주소로 무작정 보냈다.

팬레터가 답변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 내가 거의 1년 가까이 기다리게 될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로 향하는 편지가 출발하고,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알바를 하며, 친구들과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머리를 밀고 부모님의 품을 떠나 훈련소, 자대로 떠나며 그곳에서 반년을 보낸 동안, 4번의 계절이 지나며 다시 겨울이 다가왔을 때 첫 휴가를 나가며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왔을 때, 우체통에 꽂혀 있던 'AS Roma'의 도장이 찍힌 편지를 발견한 순간의 기쁨은 이제 다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순간이었다. 그 속에 담긴 살짝 번진 마카로 직접 싸인한 사진은, 오늘도 나의 최고의 보물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