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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싶던 날, 우리는 승리했다.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한또랑
작성일
2024-02-22 18:00
조회
169
2018년,
내 나이는 20대 후반을 달려가는중이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겹쳐 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경력이라고는 쓰기도 부끄러운 아르바이트 경력들. 취업 준비는 내게 먼 얘기로만 느껴졌다.
주변 친구들에게서는 취업 소식이 들려오고
나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매일을 도망치기 바빴다.


어느덧 취준생이던 나는 취업을 포기하기 시작했고 낮밤은 바뀌었으며 씻지도 않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멀어져만 갔다.
뜬 눈으로 새벽까지 울다가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이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그 즈음에 러시아 월드컵이 시작됐다.
스웨덴전, 멕시코전을 연달아 패배하면서 인터넷 뉴스에는 매번 선수들 욕으로 도배가 됐다.
욕하는 것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언니도 앞에 두 경기를 챙겨보며 선수들을 욕하기에 바빴다.


다음은 독일과의 경기였다.
모두들 7대 0으로 질것이다,
이제와서 승리해봤자 16강은 물건너갔다 등등
부정적인 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축구 최고 강대국 중 한팀인 독일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덜 부끄럽게 패하자고 모두 포기한듯이 말했다.


2018년 6월 27일,
언니는 축구 경기를 보지 않고 그냥 놀겠다며 나갔다.
어차피 질거 봐서 뭐하냐고 했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도 언니 때문에 본거라 딱히 언니가 없으니 나 역시 축구를 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독일전이 꼭 보고 싶었다.
우다다다 쏟아져 나오는 비관적인 댓글들이 내 상황 같이 느껴져 이입이 됐다.
이력서 100개를 넣어도 서류에서부터 탈락하던 지난 내 모습과 희망이 없는 현재조차 비슷하게 느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말도 안되는 경기에서 우리가 이긴다면,
나에게도 희망이 있을거라고.
그러니 죽고싶단 생각 대신 죽기살기로 노력해보겠다고.
미신을 잘 믿는 편이라 신점, 운세에 집착을 하곤 하는데 이 날은 독일전이 나의 운명점과도 같았다.
꼭 한국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반전이 시작됐고 독일은 역시 막강했다.
대부분의 골 점유율을 독일이 가져갔고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두가 상대도 안된다며 자국을 비하하고 있었다.
더더욱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후반전 초반까지도 독일의 공격은 쏟아지듯이 이어졌다.
골문을 악착같이 지켜내고 있는 선수들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처럼 느껴져 펑펑 울면서 시청했다.
제발 끝까지 막아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후반전이 끝나고 손톱만하던 희망은 부풀어져갔다.
추가시간 길게 주지 말라고, 비긴걸로 만족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다들 질거라고 예상하는지, 추가시간은 똑같이 주어지는데 왜 독일만 골을 넣을거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후반전 추가 4분, 드디어 김영권 선수의 기적같은 골이 터졌다.
아파트 전체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날이다.
집에 나는 혼자였지만, 우리는 같이 한 마음으로 이기길 응원하고 있었다.
남은 추가 시간이 걱정됐다.
독일 역시 골이 터질 줄 몰랐는지 갑자기 미친듯이 공격을 퍼부어댔다.

1분이 한시간 같았다. 우리 선수들이 차라리 누워서 침대축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황소처럼 공격을 이어가던 독일은 결국 골키퍼까지 공격에 가담하게 되고 골문이 비어있던 틈을 타 손흥민이 한골을 더 넣고 2:0으로 자랑스럽게 경기는 끝이 났다.


스웨덴이 멕시코를 상대로 이기는 바람에 16강 진출은 못했지만 16강 진출보다 더 뿌듯한 독일을 상대로 최초로 승리한 아시안팀이란 수식어가 붙은 셈이다.
아파트는 축제 분위기였고, 내가 봤지만 믿을 수 없는 드라마같은 경기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지난 1년동안 내내 슬프다고 생각했던 나는, 독일전을 보는 내내 흥분되고 설레고 행복했다.
한 골을 넣고 침대 축구 가자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끝까지 선수들이 이 악물고 뛰어주지 않았다면 독일을 상대로 2:0 완승이라는 결과 또한 없었겠지.


고작 축구 경기가 뭐라고..
내가 늘 하던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도전하는 것보다 포기하는게 쿨하다고 생각해서 내 인생조차 포기하고 스스로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의외로 인생의 전환점은 아주 단순한 계기로 시작된다.
나에게는 그것이 2018년 6월 27일 독일전이었다.
그 한 번의 축구경기로 다 놓아가던 희망을 붙잡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으며,
절대 불가능 한건 없다고.
끝날 때까지 절대 끝난게 아니라고.
희망을 놓지 않고 달리다 보면 결국 승리한다고
그 경기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바로 다음 날, 정신과 상담부터 예약했다.
느리게 가더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같이 씻고 나가려고 노력했다.
내가 준비가 됐을 때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
다시 이력서를 넣었다.
100개를 넣고 탈락하면 그만큼 더 이력서를 보냈다.


결국 취업에 성공했고, 직장에서 힘들 때마다
내가 얼마나 취업하길 원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생각하며 꾹 참았다.
연봉도 높이고 이직도 했을 때 카타르 월드컵이 시작했다.



우루과이전은 0:0 무승부로, 가나전은 3:2로 패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포르투갈을 앞둔 시점, 우리나라는 독일전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우승 유력팀으로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한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친구들도 가족도, 포르투갈전은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느낌이 좋았다.이길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에게도 말했다.
“왠지 이번에 이길 것 같아“

언니는
”그래, 이길 것 같으니까 재밌게 혼자 봐.“
라며 먼저 자겠다고 했다.


경기를 시작한지 5분만에 포르투갈 선제골이 터졌다.
허탈했다. 축구를 보면서 먹으려고 시킨 치킨이 오지도 않았는데 선제골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반 27분, 김영권의 동점골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후반전이 끝나갈 때, 다들 동점이면 선방했다고 댓글이 달리고 있을때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넣으면 드라마가 아니야, 원래 극적인 반전일수록 더 감동인 법이야.
라고 생각하며 역전골이 터지길 기다렸다.
후반전 추가시간, 결국 황희찬의 추가골이 터지고 새로운 드라마를 썼다.


경기가 끝나고도 안심할 수 없었다.
우루과이, 가나전으로 16강 진출이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가나는 2:0으로 우루과이에게 패하여 나란히 16강 진출은 물거품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한번 더 환호했다.


2010년, 수아레즈가 공을 손으로 막으며 아프리카 최초로 가나가 4강 진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었다.
수아레즈는 가나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했고 자극을 받은 가나는 이를 악물고 나란히 탈락하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가나전에서 우린 패했지만, 그 때 넣은 2골로 인해 결국 우루과이 대신 우리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모든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되고 이 모든것은 선택이다.

서사가 없는 축구팀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이게 무슨 소용이야 라고 해도 시작한다면, 작은 희망도 노력한다면 불가능이란것은 없다.


미리 안될것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매 순간 현재에 집중하여 모두 최고로 멋진 미래를 만들길 바란다.
인생 역시 끝날때까지 끝난것이 아니고,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전체 1

  • 2024-02-22 19:32

    스포츠도, 인생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죠. 잘 견뎌주셨고, 잘 버텨주셨습니다. 힘들었던 절망의 순간에서 이렇게 일어나셔서 회복된 메세지를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백일장을 진행하며 정말 좋은 글들에 매일 행복해지네요. 한또랑님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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