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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레인의 작은 영웅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hope
작성일
2024-02-27 16:03
조회
152
살갗에 닿는 차갑고 정없는 한기가 지나가고 나면 코끝에 익숙한 락스 냄새가 훅 하고 덮쳐온다.
수영장에 들어설 때면 마주치는 이 한기는 그렇게 오랜 세월 만남을 이어오는 데도 어쩜 서로 익숙해 지지 않는지.
대신 그 뒤로 따라붙는 호불호가 강한 이 락스 냄새가 어느새 나를 유년시절의 추억 한 켠으로 데리고 간다.

초등학교 4학년 나는 또래에 비해 몸집이 왜소하고 키가 작았다. 그래서 매우 내성적이며 자신감이 없었고 또래 친구들을 무서워했다.
친구들 앞에만 서면 왠지 내가 곧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그런 내가 좀 더 자신감 있게 단련되었으면 해서인지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어느 날 수영장으로 데리고 갔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수영장은 속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푸른 앞치마가 펄럭이는 모습이었다. 그 앞치마는 중간중간 알록달록 진주같은 악세서리를 걸쳤는데
이는 큰 수영장에 선을 구분짓기 위해 놓인 레인이라는 존재였고 때때로 나의 생명줄이 되어 주곤 했다.
처음엔 호흡도 하지 못하고 수영장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공포감이 컸다. 수영에서 호흡을 하는 연습인 음파를 통달하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호흡이 되자 물에 몸을 띄우는 연습을 했다. 무서운 마음에 몸에 힘이 들어가니 자꾸 물을 먹었고 그때마다 울면서 선생님께 매달리기 일쑤였다.
그 다음 킥판을 잡고 다리 차는 연습, 그 다음은 팔을 크게 저어 서서히 물길을 가르는 연습, 그 다음으론 팔과 다리를 동시에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 나는 비염을 심하게 앓으면서도 엄마에게 매번 그만두고 싶다고 편지를 쓰면서도 그때마다 단호한 엄마 때문에 수영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영을 하면서 내 몸은 별달리 커지거나 단단해 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와 홀로 싸우는 법을 끝없이 연습해 나가고 있었다.
수영은 어느 도구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히는 스포츠였다. 오로지 나의 몸 하나로 예측할 수 없는 물과 홀로 싸워야 했다.
물 속에 눈과 귀가 모두 잠기고 나면 세상과 단절된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붙잡고 있던 내 다리를 놓는 순간 이 세계에 오직 나와 물
두 존재의 숨소리만 들렸다. 나는 이 고요한 세계에서 어떻게든 나에게 주어진 두 팔고 두 다리만으로 앞으로 헤엄쳐 나가야만 했다.
길지 않은 나의 두 팔과 두 다리도 연습을 거듭하니 점점 힘이 붙고 단단해졌다. 물살을 뚫고 나가는 쾌감은 생각보다 굉장했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존재와 맞서 싸우며 나가고 있는 내가 대단해 보였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학교 대항 수영대회가 있었는데,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학교에 나와 남학생 한 명뿐여서 자유형 종목 반 대표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는데, 막상 대회장에 나가보니 다른 학교 대표로 나온 학생들은 전담 코치도 있고 비싼 수영복과 물안경을 장착하고 있었다.
탈의실에서 마주친 그들이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덩치가 두 배임을 보고 순간 또다시 위축되었다. 모두들 물에 들어가 연습을 하고 있는데 나는 온 몸이 쪼그라들어 머뭇거리다
심장에 물이라도 묻힐 겸 한쪽에 쪼그려 앉았다. 그 때, 발을 그만 헛디뎌 풍덩 소리와 함께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 순간 나의 값싼 물안경이 뒤집어 지면서 물을 한껏 먹어버리고 말았다.
눈과 코가 다 맵고 서러웠다. 난 왜 이리 스스로 작아질까. 내 자신이 한심했다.

실전경기 전 점심시간에 엄마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그 속엔 언제 준비하셨는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밥이 있었다. 나를 보살피기 위해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김밥과 초콜릿, 담요 등을 준비해 주셨다. 내게 없는 코치 역할을 엄마가 해주고 있었다. 엄마의 헌신에 대해 나의 좁은 마음이 불효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생각을 바꿔야 겠다고 결심했다. '아! 전문코치가 없으면 어때. 내 코치는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아는 엄마야.',
'몸집이 작으면 어때. 남들 한 번 팔 저을 때 나는 두 번 휘저으면 되!'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보며 주눅들었지만 내가 가진 것에서 희망을 갖고 당당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실전경기에 가장 끝레인인 8레인에서 힘차게 발돋움하며 물속에 뛰어들었고 내가 어떻게 헤엄쳤는지도 몰랐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전광판에 내 이름과 내 학교명이 1위에 떠올랐다.

나는 그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가장 작은 몸집의 8레인 선수였던 내가 당당히 예선 1위를 했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나는 끝내 결선 3위로 동메달을 차지했고 명예롭게 학교로 귀환했다. 어느새 나는 우리 학교의 작지만 큰 스포츠 영웅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8레인의 작은 영웅'이라 불러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자신감이 낮아지고 위축될 때면 나만의 스포츠 기억을 떠올리며 극복하곤 한다.
작지만 그보다 큰 담대한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임을 스포츠는 어린 내게 가르쳐 주었다.
전체 1

  • 2024-02-29 02:26

    멋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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