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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투수도 소투수인 적이 있었다.(feat. 2024 아시안컵 댓글 테러를 보며)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코봉
작성일
2024-02-10 20:47
조회
141
대투수.

KBO리그를 대표하는 KIA 타이거즈 양현종 선수의 애칭이다. 2007년에 데뷔를 해서 현재까지 오랜 시간 대한민국 야구와 기아의 야구를 대표하는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한 양현종 선수. 야구의 찐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양현종 선수도 대투수가 아닌 소투수 시절이 있었다. 양현종 선수는 데뷔 년도인 2007년과 2008년에 팀내에서 주로 패전 처리조의 역할을 맡았다. 이기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곤두박칠지는 성적, 비가 내리면 물방개가 무등경기장 그라운드를 제 집처럼 활보했던 열악한 시설이 그 당시 기아야구의 낭만이었다. 성적에 상관없이 진심으로 기아 야구를 좋아하는 1000명도 안 되는 팬들은 매일 야구장에 방문하여 팀의 승리에 관계없이 안타 하나에도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마냥 만원 관중이 냈을 법한 함성과 성원으로 야구장의 빈자리를 가득 채웠다.

그날도 어김없이, 늘 그렇듯 기아 야구는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었고, 양현종 선수가 그날의 패전을 처리하기 위해 등판했다. 기아 팬들이 바라는 건 역전승이 아니었다. 아웃 카운트 하나에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고, 삼진 하나를 잡으면 우리 타자가 홈런을 친 것처럼 폭발적인 팬심이 있던 낭만의 시대였다. 양현종 선수는 등판하자마자 무기력하게 볼넷을 남발하고 안타를 허용했다. 무등경기장은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 소리만 쩌렁쩌렁하게 들릴 뿐, 무거운 적막함이 공기와 섞이고 있었다.
순간 적막함을 깨는 응원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 왔다. 홈팀 응원석인 1루쪽 스탠드에서 한 젊은 여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신인 양현종 선수를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응원했다.

"기아의 양현종~삼진! 기아의 양현종~ 잡아라 삼진~! 기아의 양현종~~~"

친구 서너 명과 술을 바리바리 싸들고 기아가 안타를 칠 때 기뻐서 한 잔, 상대방이 안타를 칠 때 슬퍼서 한 잔, 우리는 이미 야구가 아닌 술에 취해 있었다. 우린 열성적인 응원녀와 불과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기아의 찐팬이라고는 하지만 KO 직전의 팀에게 계속 안타를 쳐대는 상대팀이 너무 얄미웠다. 나아가 원망의 감정은 계속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는 마운드 위 양현종 선수한테로까지 전가되었다. 패배감과 무력감은 곧 분노감으로 폭발하여 나는 마운드를 향해 술이 빌려준 객기를 이용하여 있는 힘껏 소리질렀다.

"내려가라~! 베팅볼 기계도 너만큼 쳐맞지는 않겠다~!!"

그리고 상대팀 타자들에게도 원망의 소리를 마구 쏟아냈다.

"코인 야구장 왔냐? 돈 내고 쳐라!"

관중들도 내 멘트에 공감한 듯 동조의 눈빛들을 나에게 모아주며 나의 섣부른 행동을 합리화시켜 주었다. 박수까지 쳐 주는 아저씨도 계셨다. 그때 양현종 선수를 열렬히 응원하던 젊은 여성이 나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젊은 여성의 얼굴엔 분노감도 아니고 죄책감도 아닌 미묘한 감정의 선들이 모두 뭉쳐 있었다. 그분은 너무나 정중한 태도로 나에게 정중함을 요구해왔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제가 현종이 누나인데요. 현종이가 부족해서 너무 죄송해요. 그런데 이제 신인이니 좀 더 지켜봐 주시고 앞으로 많이 응원해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말을 듣는 순간 취기가 싹 가시며 내가 부린 객기에 치명적인 경종이 울렸다. 나는 초등학생들도 그토록 참기 힘들다는 가족 욕을 가족 앞에서 해버린 것이다.

거의 매일 야구장을 방문하여 현장에서 동생에 대한 처참한 욕을 들어가며 꿋꿋하게 동생을 응원하던 양현종 선수의 누나.
외로운 마운드 위에서 관중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씩씩하게 투구를 이어 나갔던 약관의 양현종 선수.
대투수는 2년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홀로 버텨가며 데뷔 3년 차인 2009년도, 12승 5패, 방어율 3.15를 기록하며 정상급 투수의 반열에 당당히 오르게 된다.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얼마 전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의 밤잠을 빼앗은 2023 카타르 아시안컵이 열렸다. 오랜 숙원이었던 아시안컵 우승은 이번에도 좌절되었지만, 나는 이번 대회를 치러 나가면서 문득 양현종 선수의 누나가 떠올랐다. 특정 선수에 대한 악플과 비난의 수위가 지나치게 높았고, 스포츠 언론지는 해당 선수에 대한 질책성 기사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일차적으로는 이 기사를 보게 될 해당 선수의 멘탈이 걱정되었고 2차적으로는 해당 선수의 가족들이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자신의 아들이, 연인이, 형이, 삼촌이 매일 스포츠 언론지에서 악의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면 어떤 참담한 심정이 들까? 기사 밑에 달린 악의적인 댓글을 보면 선수나 가족이 더 이상 한국이란 땅에서 설 수 없을 만큼 가혹한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란 있을까? 대한민국 축구에서 영원히 기억될 명장 히딩크 감독도 월드컵을 얼마 안 남겨둔 시점에서 체코에 5:0. 프랑스에 5:0으로 져서 ‘오대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한국식 이름을 국민들에게 받은 적이 있다. 세계적인 스타인 메시와 호날두도 키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하는 페널티킥 실축을 하는 때가 종종 있다.

지금은 개인화를 넘어 핵개인화시대로 접어들었다. 익명이라는 날카로운 무기 뒤에 숨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 그로 인해 치명타를 입은 상대방을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내몰게도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개별화된 민족이었나, 한민족이었나. 외세의 침략에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었나, 하나로 뭉쳤었나. 우리 대한민국을 빛내는 진짜브랜드는 승부와 경쟁에의 집착이 아닌, 관용과 배려가 넘치는 공동체 정신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전체 1

  • 2024-02-13 11:27

    코봉님께서 남겨주신 이글은, 저도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글이네요. 맞아요. 스포츠의 본질은 '즐기자'인데,
    상대팀을 비난하며 또는 누군가를 폄하하며 하나가 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죠. 누군가를 끌어내리는 것에서 오는 쾌감은 스포츠의 정신, 본질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좋은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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