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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거운 여름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Something305
작성일
2024-02-12 19:39
조회
87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제 인생에서 이토록 뜨거운 여름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싶은 제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애니메이션이라고는 어릴적 영화관에서 보던 겨울왕국 같은 것이 다였던 저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일본에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고 웃기게도 한 스포츠 애니메이션을 보고서야 배구라는 종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와 같은 체육관을 쓰던 저는 그제서야 체육관 벽에 걸려있는 고등학교 배구부의 우승기를 보게 되었고 나도 배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중학교에는 배구부가 없었고, 동아리를 만들고 싶었던 저와 제 친구 몇 명이 모여 교무실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선생님 마다 여쭤보며 동아리를 맡아주실 선생님을 찾아다녔지만 여간 쉽지 않았죠. 한 여름 땡볕에 방학중인 학교의 강당 문을 여는 법도 몰라서 학교 소운동장에 모여 문구점에서 싸게 팔던 7천원짜리 흰 색 배구공을 피부가 새카매질때까지 튀기고 놀았습니다. 유튜브로 배구 강의 영상을 보며 따라하기도 하고 어느날은 강당에서 하고 있던 고등학교 배구부 선배들을 보고 놀라서 황급히 빠져나왔다가 강당 계단에 앉아 공이 이리저리 튀기고 일정한 기합소리를 들으며 설레하기도 했어요.
중학교 2학년이 되고는 한 체육선생님을 지독하게 쫓아다니며 설득했고 마침내 3학년이 되던 그 해, 저희 중학교에서는 배구부가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지역에 배구부가 있던 초등학교에 친구들이 우리 중학교에 배구부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중학교로 입학했고 동아리 인원이 다 채워지지 못할까 걱정했던 것은 다 쓸모없던 것이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코치님이 오신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정말 설레었습니다. 몰래 강당에 숨어들어와 배구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배구를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어찌나 기대되었는지 몰라요. 1학년때부터 함께 동아리를 만들고 싶어했던 같은 학년 친구들과 2학년 친구들, 초등학교에서부터 배구를 하다가 온 1학년 친구들까지. 그렇게 동아리가 만들어졌습니다.
후배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훈련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부주장이라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고 훈련이 힘들고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축구 몇 판 같이 뛰면 금방 친해진다던 옛날 남자애 친구의 말이 정말 맞더라고요. 함께 훈련을 하고 게임을 하니 금세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6월 시대회가 2주 남았을 시점이였습니다. 처음 하는 실전 경기였고 시대회에 이기지 못하면 올해 첫 창설된 이 동아리가 내년에는 유지되지 못할거라는 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한창 열정이 피어오르던 때에 주요 공격수였던 후배가 손을 다치고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장난도 잘 치시고 친근하게 대해주시던 코치님이 진심으로 혼내는 모습에 저 역시 선배이면서 후배가 점심시간에 장난치다 다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많이 들고 걱정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이선 수비수였고 주요 공격수였던 그 친구의 자리를 대체할 마땅한 사람이 없었지만 나름 공격 연습을 해봤던 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시합 당일날, 시합 경험이 있는 동생들이 긴장하지 말라며 등을 두드려주었고 괜히 언니 티를 내고 싶었는지 전혀 긴장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였습니다. 상대학교에 건너편 선수의 키가 170센티가 넘었으니까요. 저는 겨우 160이 되는 신장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팀은 잘했고 상대팀이였던 두 학교에게 한 세트도 내어주지 않고 시대회 1등으로 도대회에 나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경기를 뛰는 것은 연습경기와는 차원이 다를정도로 흥분되었습니다. 내가 배구를 배우고 시합을 나가고 승리를 했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시대회에서 이기고 도대회에서 입을 유니폼을 받은 날은 후배애들이 들으면 놀릴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사실 그 날 유니폼을 입고 잤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 매일같이 훈련에 나와 도대회를 위한 연습들은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습니다.
아직도 뚜렷하게 생각납니다. 학교 강당 옆 빈 공간에 모여 각자 몸을 풀고 있던 학교들. 그 사이에서 몇번만 공을 튀겨도 유니폼이 땀에 젖었던 것. 위로 뜬 공을 받기 위해 쳐다본 하늘은 세상에서 가장 푸르던 것. 경기 이후 악수를 하며 수고했다며 인사를 나누었던 상대팀, 첫 경기를 이기고 점심 먹기 위해 소란스럽던 시합장을 나와 걸었던 길. 담배냄새가 나던 좁은 모텔방에 불 끄고 누워 꼭 전국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던 것. 함께 대회에 나간 고등학교 선배들의 경기를 보며 응원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던 것.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넣은 서브가 미스나고 벤치 옆에 서있는 코치님 눈치를 봤던 것. 점수를 따도, 실점을 해도 화이팅을 계속 하자고 했던 대로 한번도 쉬지 않고 소리질렀던 우리학교의 구호. 높이 뜬 공이 우리팀 공격수의 손에 닿는 순간 커버를 하기 위해 네트 가까이 붙어 높이 뜬 공을 바라보던 그 순간 시야에 가득히 채워지던 조명 빛은 그 한순간 태양빛이었습니다. 배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중요한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내가 받은 서브가 세터의 손을 타고 우리팀 공격수에게 닿아 땅을 뚫듯이 때려진 공이 코트 바닥에 닿으며 나는 터지는 듯한 소리가 아직까지 선명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열심히였지만 4강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상대팀과의 점수가 3배 4배 차이가 되어가면서도, 경기중 거의 처음으로 찾아온 우리팀의 흐름에 작아졌던 화이팅이 점점 커지고 상대팀의 승리가 코앞이었던, 우리가 승리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그 때, 화이팅을 외치던 주장의 말이 기억납니다. 아직 안 끝났어. 우리는 이제 시작인거야.
저는 그 말을 믿었어요. 정말로 상대팀이 20점까지 따고 마지막 1점을 남긴 채 상대팀 서브가 들어오던 그 순간까지도 그 말을 되새겼습니다.
아쉬운 것도 많았고 후회되는 것도 가득 안은채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관객석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던, 각 시를 대표해 나온 여러 중등부, 고등부 선수들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쳐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울지말라고. 정말 잘했다고.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의 창 밖 풍경은 비가 내렸습니다. 여름에 내리는 강하고 짧은 소나기인지 새차게도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고요한 버스 안에서 유일한 빗소리가 점차 줄어들고 구름이 개어진 하늘에는 무지개가 피어있었습니다. 글로 적으니 너무 연출같지만… 정말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무지개를 보고 신나하며 뒤를 돌아보던 앞자리 동생이 없었더라면 몰래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휴게소에서 같은 3학년 친구들과 함께 고3 언니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나도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배구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졸업을 하고나서 저와 같은 3학년들의 졸업을 축하해주는 동생들에게 편지를 남기면서 그 해 여름을 꼼꼼히 되돌아 보았습니다. 부족한 것도 많았고 서툴었던 나의 첫 배구는 어쩌면 함께 했던 친구 동생들이 있었기에 폭염이였다던 그 여름이 푸르디 푸른 하늘로만 기억되고 손에 가득 찬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땀이 내 연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는 고등학교에 와서도 배구를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시대회때 상대팀으로 만났던 그 170센티가 훌쩍 넘는 그 친구는 이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까지 모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잊지 못할 그 해 여름으로부터 제가 여름을 가장 좋아하게 된 이유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 해 여름, 우리가 만들어낸 승리로 계속 활동할 수 있게 된 동아리 동생들도, 새로운 팀에 들어가 공을 만질 나도, 팀 스포츠를 하고 있는 모든 이들 역시 이번 여름도 모두 아쉬움 없이 열정을 불태워 뜨거운 여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체 1

  • 2024-02-13 11:02

    저는 배구를 잘 모르지만 정말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그 해 여름을 스쳐지나간 모든 바람, 쨍한 햇볕, 또 피어난 무지개, 주변에 교복을 입고 왁자지껄 무리지어 다니는 학생들까지. 모든 것이 다 눈에 보일 정도로 실감나게 작성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승리를 하지 못하면 어때요. 그 열정과 그 간절했던 여름이 이렇게나 예쁠 수 있는데, 또 이렇게 오래 남아 저에게까지 그 감동이 전해질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도 Something305님 덕분에 저도 그 싱그러운 여름이 벌써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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