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하나가 되었던 우리

꽤나 오래된 이야기 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였던 2002년, 저는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스포츠라고는 축구, 야구 정도만 알던 학생이였습니다. 축구는 발로 공을 차는 것이고 야구는 공을 던지고 치는 것이라고 알던 저에게 어느 날 '월드컵'이라는 것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축구에 별 관심이 없던 저도 어느 날부터 반 아이들이 빨간색 'the red' 티셔츠를 입고 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마트에서인지 친구들과는 모양이 조금 다른, 지금 생각하면 가품인 티셔츠를 사주셨고 저도 열심히 입고 다녔습니다.
축구 규칙도 몰랐지만 밤 늦게까지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저희 집은 티비가 조금 작은 편이였는데 쇼파에 앉으면 티비가 잘 보이지 않자,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쇼파를 티비가 있는 앞까지 밀어주셨고 네 가족이 나란히 앉아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규칙도 잘 모르고 선수 얼굴도 몰랐던 저는 어느 순간 분위기에 동화 되어 넋을 놓고 월드컵을 시청했습니다. 골을 넣는 순간이면 아파트 전체가 울리도록 다같이 환호성을, 안타까운 순간에는 모두가 안타까운 탄성을 질렀습니다. 여름이어서 창문을 모두 열고 시청했는데 아파트 주민들 전체가 동시에 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또 즐거워서 나중에는 일부로 창문을 열고 경기를 시청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아파트 중앙광장에 대형스크린을 설치했으니 원하는 사람은 다함께 경기를 시청하자는 안내 방송을 안내하였습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에 온 가족이 함께 중앙광장으로 갔는데 일찍부터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으며 경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날의 경기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족이 다함께 돗자리를 펴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함성을 질렀던 기억 만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저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스포츠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스포츠로, 축구로 하나가 되었던 그 날의 우리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렇기에 반 아이들과 스포츠 활동을 하는 시간은 꼭 가지려 합니다. 스포츠 활동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흥분하고 싸우는 일이 잦습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그리고 저도 압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것을.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이 시간이 얼마나 우리에게 값지게 다가올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