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없는 우정

제가 9살 무렵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영국으로 해외여행을 갔습니다.
영국에는 어머니 친구 분께서 살고 계셨고, 관광을 마치고 해당 집에서 며칠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워낙 어리기도 했고, 영어를 기초적인 것을 배우기야 했지만 한국식 교육으로는 입을 떼기도 어렵더군요.
겨우 입을 떼서 말하더라도 "How much?" 하고 물건 가격을 묻는 말 밖에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외에서 외국인들 밖에 없는 환경에서 당차게 말하는 자신감도 부족했던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어렸긴 했지만 당시에도 축구를 좋아했고, 어머니 친구 아들도 축구를 좋아해서 집 앞 정원에서 공을 찼습니다.
둘이서 하는 공놀이가 지루해질 때 즈음, 이웃집 잉글랜드 아이들이 저희를 보더니 같이 축구를 하겠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이 때도 사실 쑥스러워서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엄마 친구 아들은 제 의사를 묻지도 않고 외쳤습니다. "Let's Go!"

이렇게 시작된 축구.
영국은 축구 종주국답게 여자아이들도 축구를 너무 잘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파워 슈팅을 차는 걸 보고 새삼 놀랐습니다. 저보다도 슛 파워가 강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부족한 실력이긴 했지만, 그 당시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그의 노력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했습니다.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지만 그 친구들의 이름을 외치며 패스, 슈팅, 센터링 정도의 웃긴 콩글리시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웃고 땀을 흘리고 경기를 끝마쳤는데, 때마침 영국 특유의 문화인 듯한 아이스크림 트럭이 노래를 틀면서 동네에 왔습니다.
같이 달려가서 1.5파운드 정도 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웃으면서 경기에 대해 떠듬떠듬 얘기하다가 헤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됐지만, 저는 여전히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울렁증이 생깁니다.
그러나 가끔 유학 온 외국인과 같이 축구를 하면, 결국 울렁증보단 같이 축구하며 '우리가 같이 어떤 플레이를 했고 걔 참 멋있었다.'는 생각과 기쁨으로만 가득찹니다.
저의 어렸을 적 시절의 즐겁기만 했던 기억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그들도 같이 축구를 한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축구를 통한 경험만 있지만,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듯 스포츠는 언어와 문화를 초월한다는 점이 저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스포츠에 대해 저와 같은 매력을 느끼시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