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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참여글] 이름 모를 친구들에게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ijh1107
작성일
2024-02-15 21:52
조회
163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스포츠를 싫어했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읽거나, 조용히 풀이나 벌레들을 지켜보길 좋아하는 특이한 꼬맹이였던 나로써는 시끄럽게 소리치며 공을 차대는, 축구를 하며 신난 아이들이 여간 짜증나는게 아니었고 때문에 자연히 축구, 더 나아가 역동적이고 뜨거운 스포츠란 것 자체를 멀리하게 되었던 것 같다.
스포츠란 것을 잘 모르더라도 세상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령 큰 기대 없이 뽑아 들었던 소설에서 예쁜 문장을 발견하거나, 다들 명작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하던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며 역시 이것은 명작이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것도 즐거움이다. 개미들이 떨어진 열매에 스멀스멀 모여드는 것도 경계하는 고양이와 숨 죽인채 눈싸움을 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것들을 곧잘하며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인생이 처음 흔들린다고 느낀 것은 당연히 사춘기때였다. 사춘기라, 지금도 내게는 괴이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조그만 오리배에 타고 있던 내가, 자고 일어 났더니 갑자기 몸이 집채만큼 커진다는 느낌이랄까. 내 몸은 놀랄 만큼 커진 몸에 적응하고 순식간에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되지만, 나를 지금껏 태워주던 오리배며 내가 갑자기 몸을 담그게 된 강물이며 모두들 날 다르게 대하니 그것만이 이상했다. 든든한 오리배였던 부모님과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게 되었고, 강물을 이루던 학교와 친구들도 이전처럼 순수하게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리배에서 떨어져 강물에서 헤엄치려 했지만, 그리 쉬운 경험도 아니었고 교훈 삼을 만큼 유익한 시간도 아니었다. 친구들은 내가 크기 전까진 투명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내가 커지고 나니 갑자기 그들의 마음을 알아내기 어려워졌다. 학교는 점점더 거세지는 강의 폭류처럼 나를 갖가지 어려움으로 몰아갔다. 점점 더 몸이 커져가며 갑자기 뒤바뀐 강물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워갔지만, 말했듯이 그리 좋은 기억이진 않았다. 꽤 아팠다고 해도 괜찮을거 같다.
그렇게 강물을 헤엄치던 나는 어느샌가 내가 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결국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가고, 죽는 것이 즐거움이 끝나는 지점이다.
즐거움이 없는 인생을 기꺼이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나는 어느샌가 즐거움이라 느꼈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개미들이 줄지어 행군하는 것들을 징그럽다며 밟아버릴 수 있을 만큼 끈기가 없어졌고,
떠돌아 다니는 '길냥이'들을 도둑 고양이라며 비난할 수 있을 만큼 영악해 졌으며, 소설을 읽어도 인상 깊은 문장을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만큼 무관심해졌다. 강물을 헤엄쳐 나가곤 있었지만, 더 이상 헤엄쳐 나갈 만큼의 자신이 없었다. 강물은 더 거세지려 하는 것만 같았고, 나는 강물을 이루는 것들과 소통할 만큼의 희망이 단 한 줌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정말 조금의 희망이라도 느낄 수 있었더라면 조금 편해졌을 텐데).
즐거움도 느낄 수 없어졌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힘이 부친다. 난 그때 헤엄치기를 포기하려 했던 것 같다.
저녁쯤에 이러한 사실을 번뜩이듯 깨달은 나는 무턱대고 집을 나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누구든 이 강물이 실은 그렇게 센 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든 잃어버린 것 같은 나의 소중한 오리배가 어디있는지를 알려줬으면 했다. 그렇게 해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 한밤중의 학교였다. 심지어 그 학교는 내가 재학하던 학교도 아니고, 그저 돌아다니다 마주친 조그만 학교였을 뿐이다. 한밤중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궁금해하며 들어갔던 것 같다. 학교의 건물들은 전부 불이 꺼져 있었으며, 당직 선생님도, 다른 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운동장에 불이 밝았을 뿐이다. 운동장으로 홀린 듯 걸어나간 나는 그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골대에 손전등모드를 켜놓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놓아두곤, 밖의 건물들이 내뿜는 휘황찬란한 도시의 빛, 그것이 걸러지고 걸러져 운동장에 남은 꽤 희미한 빛에 의지해
서로 부딫혀 가며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큰소리로 웃어대며 한 밤중에 축구를 하고 있는 꼴이 우스웠던 건지, 아니면 그들이 단지 즐거워 보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냥 운동장의 한 구석, 정자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았다. 빛이 비춰지는 골대의 빛이 강했기 때문인지 난 그들을 어렴풋하게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축구를 보고 있던 나는 문득 그들이 헤엄치는 법을 정말 잘 안다고 느꼈다. 축구라는 행위에 대해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것을 공유하는 그들에게서는 끈끈한 유대감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수영 선수처럼, 그들은 강을 즐겁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 그 축구라는 아주 작은 인생의 단면에서 엿보였다. 왜 그럴까. 정말 나로써는 알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풀 수 없는 문제는 내게 당혹감과 분노만을 남긴다. 나는 괜히 기분만 잡쳤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축구 보고 있냐?" 라고 말했다. 내가 뒤돌아보자 그 곳에는 머리털이 다 빠져가는, 뚱뚱한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그는 정자로 다가와 (체육 선생님들이 즐겨 하는 포즈인) 팔짱을 낀 채로 서서 내게 말했다. "우리 축구부 애들이 축구는 못해도 열정은 알아줘야 하지 않냐. 애들이 담에 경기에 서로 출전하겠다고 점심 시간에 온갖 X병을 떨더라." 선생 같은 그는 아무래도 나를 이 학교의 학생으로 착각한 듯 했다.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슬슬 가야했던 참이라 나는 이 학교 학생이 아니며, 이제 나갈 것이라는 말을 하려 했는데 다시 그가 말했다.
"축구란게 열정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야. 능력이 있어야지. 근데도 저렇게 열심히 뛰댕기는 꼴을 보면 내가 다 심장이 뛴다. 저게 저렇게 즐거운가 하고 그러지.
개들처럼 공만 가지고 저리 신나게 뛰는게 웃기지 않냐?" 이 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이런 웃기는 말을 했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저런 행위 자체에서 저 애들이 살아 있는게 느껴져요. 뭐라 할까, 그냥 그런 거 같아요." 그는 조금 거북하게 큰 소리로 웃으며 "왜 그렇게 말하냐? 아무튼 쟤네가 살아 있다는 건 당연한거 같다. 저걸 보고 모를리가 없지 않냐?" 라고 말했고, 나는 갑작스레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그 때
그가 나에게 "근데 너 몇 학년 몇 반이지? 내 시간 애니?"라고 묻자 나는 재빠르게 일어나 그 곳을 빠져 나오고 말았다. 복잡한 심정으로 학교를 빠져나와 걷던 나는 미친듯이 머리가 생각들로 꽉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선생님이나 학생들이나 내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스포츠란 것에 즐거움이고 열정이고 다 두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이제 무엇이 즐거움인지도 모르겠고 열정도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빴던 것이, 아마 나는 그 때 살아가는 방법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그것이 남한테서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꼬왔던 모양이다. 그들은 살아가며 축구라는 즐거움을 찾아낸다. 그들은 열정과 관심을 담아 그 즐거움을 파헤치며, 그것으로 축구부라는 새로운 즐거움까지 이어낸다. 아마 그들은 축구 선수가 되거나, 못해도 처음의 축구라는 즐거움을 잊지 않는 다른 즐거움을 알아낼 것이다. 그들의 인생은 그렇게 즐거울 것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 나는 지금껏 즐거움을 소모해 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게 주어진 즐거움을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소모해 버리는 식으로 즐거움을 떠나 보냈다. 그렇게 모였던 즐거움들은 다른 즐거움을 맺지 못한 체 사라졌고, 오직 어려움만이 끊임 없이 몸집을 불려와 인생의 즐거움을 모두 먹어치운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만 나는 내 인생을 손해봤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이 나빠지려 했지만, 불현듯 다시는 즐거움을 이렇게 간단히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며 이것을 깨달았다는 즐거움이 내게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이 늦은 시간까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곤 사춘기가 힘들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내 곁엔 부모님이 있다고 늘 듣던 말을 해주었지만,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 줄 수 있었다. 오리배. 가족이라는 큰 즐거움이 어느샌가 내게 돌아와 있었다. 씼고 자려고 방에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생각했다. 어쩌면 즐거움을 되찾는 과정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 즐거움이 내 인생을 가꿔주지 않을까? 당장 내일이라도 아무거나 붙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난 그 날의 긴 하루를 마쳤다.
지금도 스포츠는 스포츠 팬들에 비하면 내게는 꽤 먼 즐거움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겐 고마움을 가진다. 그들의 아주 조그만 단면인 축구를 하던 친구들, 그들의 조그만 인생의 단면을 엿보게 해줌으로써 계속해서 헤엄쳐 나갈 힘을, 뿐만아니라 조금은 유쾌하게 헤엄쳐 나갈 여유를 선물해 주었으니까. 그것이 스포츠를 싫어했던 내가 가지는 스포츠의 따뜻한 추억이다.
전체 4

  • 2024-02-15 21:54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한 3년 전쯤 중학생이 갓되었을 때이고 지금은 고등학생으로써 빡센 수험 생활을 하고 있네요ㅋㅋ


  • 2024-02-15 23:05

    캬..


  • 2024-02-15 23:05


  • 2024-02-19 10:46

    글 표현력이 정말 좋으세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글을 많이 남겨주시는 분이 되시길 살짝 바라봅니다:)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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