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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공돌이
작성일
2024-02-20 06:27
조회
86
<공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
어둠이 내려앉은 밤. 깊은 잠의 늪 속에 빠져 달콤하게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희미한 불빛. 깨고 싶지 않은 나의 정신을 점점 선명하게 부르는 저 불빛은 뭐지? 꿈뻑이며 뜬 내 눈에 희미하게 들어온 것은 어둠 속에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푸르른 빛에 들뜬 남편의 얼굴이었다. 내가 찡그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공포 영화 속 인물처럼 스크린에서 나오는 빛에 얼굴만 허옇게 보이는 그의 두 눈은 휴대전화 화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안 자고 뭐 해?”
“아이고, 깼어? 미안, 미안. 얼른 다시 자.”
잠 기운이 가득한 나의 불퉁대는 목소리에 베개에 기대 있던 남편이 놀라서 윗몸을 일으켰다. 눈은 화면에 고정한 채 깨워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남편은 주섬주섬 카디건을 걸치더니 거실로 나갔다.
하지만 슬그머니 달아난 잠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거실의 작은 등을 켜는 소리, 소파에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몸을 뉘어보려고 부스럭 대며 내는 소리가 문틈으로 희미한 빛과 함께 들어왔다. 조용하고 깊은 밤에는 조금만 뒤척여도 그 소리가 거슬리는 법인지 한참을 달아난 잠을 부르기 위해 씨름을 하고서야 나는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아침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니 푸르뎅뎅한 얼굴로 나를 깨웠던 남편은 알람 소리도 못 들은 채 내 옆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아마도 내 잠을 깨우고는 거실에 나가 홀로 경기를 보던 남편이 잠과 바꾼 승리의 기쁨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침대로 들어와 뒤늦은 단잠에 빠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나는 다시 깊이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것은 바로 얼마 전 끝난 카타르 아시안 컵 경기가 펼쳐지던 어느 밤의 이야기다.
스포츠 경기 관람이 취미인 남자와 같이 살다 보니 중요한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뜨고 베개에 기대어 휴대전화로 경기를 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잠이 깨는 무수한 밤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미국에 와서 살면서 시차 때문에 어두운 밤에 침대 옆에서 불쑥 흘러들어온 낯선 불빛이 나의 잠든 눈을 노크하는 횟수가 더 늘었다. 무슨 공포영화 속 주인공도 아니고 깊은 밤, 내 잠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빛에 안 떠지는 눈을 겨우 뜨면 떡하니 보이는 푸르스름한 보름달. 휴대폰의 푸르뎅뎅한 불빛에 허옇게 빛나는 남편의 얼굴이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여전히 새삼스럽다.
낮에야 둘 다 각자의 직장에서 일하느라 남편이 일터에서 짬짬이 경기를 보는지 어쩐지 나야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늦은 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이렇게 휴대전화 불빛에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얼굴로 남편은 종종 나의 잠을 깨우곤 한다. 스포츠에 관심이 1도 없던 사람이 그런 남자랑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떤 경기들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선수들이 이슈가 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활양하는 박지성, 구자철, 손흥민, 황의조, 기성용, 이승우, 이강인 등과 같은 선수들이 중요한 경기를 하는 날이면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나라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이 합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여건으로 남편의 축국 직관의 간절한 노래는 흘러가는 유행가처럼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되곤 했다.
그러나 경기 직관을 그저 꿈만 꾸던 남편이 이번 아시안 컵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조금 달랐다. 늦은 시간 경기가 있을 때면 휴대전화의 푸른빛에 기대어 경기를 보느라 밤을 보내던 남편은 단단히 결심을 한 듯 16강 경기가 진행될 무렵부터 카타르행 비행기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꿈은 알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내가 남편의 카타르행 비행기 타령을 못 들은 척 외면하는 사이 8강에서 한국이 호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남편의 가타르행은 거의 실현이 되어가는 듯했다.
나 또한 다른 축구 팬들처럼 우리 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해 승리하기를 염원했지만 우리 팀이 이길수록 남편이 정말 카타르행 비행기표를 사서 훌쩍 경기 관람을 하러 가 버릴까 봐 슬슬 걱정이 되었다.
“지금 카타르 갈 여유가 어디 있어. 다 알면서. 정말 가려는 거 아니지?”
퇴근 후 집에 오면 비행기표 검색창과 아시안 컵 관련 각종 유튜브 검색 사이를 넘나 드느라 분주한 남편을 훔쳐보며 나는 우리의 현실을 남편에게 상기시키곤 했다. 하지만 두 아이를 둔 집안의 가장으로 틈만 나면 비행기표 검색과 경기 내용 재관람으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차마 결재를 누르지 못한 채 남편이 망설이는 사이 한국은 4강에서 요르단에게 패배를 하고 말았다. 온갖 뉴스에서 각양각색의 기사와 견해와 비판이 쏟아지는 속에서 남편은 눈물과 비통에 젖은 한국 대표팀 선수들만큼 어깨가 내려앉은 또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거 봐. 카타르행 비행기표 안 사길 잘했지? 갔다 그냥 올 뻔했잖아?”
오르단과의 경기에서 어처구니없는 패배로 인해 실망과 분노로 뒤엉킨 관련 유튜브 영상과 뉴스 기사를 보고 있는 남편을 향해 나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그러나 헛헛하게 웃는 남편을 보니 아차 싶었다. 내 말은 맞는 말이지만 남편의 실망감을 위로하기에 알맞은 말은 아니었다. 경기에 져서 망연자실한 대표팀도 온갖 스캔들이 난무하고 분노와 비난으로 논쟁을 벌이는 한국의 축구계를 향해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제일 안쓰러운 사람은 지난 몇 주간 한국 대표님의 경기에 신이 나서 카타르에 가겠다고 어깨가 들썩였다가 축 처져버린 남편이었다.
“다음 월드컵은 우리나라 경기가 미국에서도 있지 않겠어? 내가 월드컵 경기 티켓 사줄게. 아니면 다음 아시안 컵 때, 까짓것 같이 사우디 가자.”
뒤늦게 남편을 위로한답시고 말을 건네었다가 다시 아차 했다. 남편이 신이 나서 당장 월드컵 티켓을 검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혼자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남편이 카타르행 비행기 표를 사서 훌쩍 카타르로 갔으면 우리나라가 이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속은 좀 탔더라도 우리 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해서 대표팀 선수들과 우리나라 축구 팬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남편이 얼쑤얼쑤 어깨춤을 추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공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좀 더 늘었더라고 말이다.
전체 1

  • 2024-02-20 11:49

    축구 덕에 울고 웃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많네요😌 TMI이고 오지랖일 수도 있는데 직관은 꼭 인생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고, 살면서 한번은 가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마침 2026년 월드컵! 북미에서 하네요! 훈훈한 에피소드가 생겨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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