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북에서 시작된 야구사랑 이야기

87년생인 필자가 국민.. 아니 초등학교에 다닐 땐 야구선수 스티커북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당시 활동하던 야구 선수들을 나열 해 놓고 문방구에서 뽑기로 스티커를 뽑아서 모두 모아 붙이면, 야구 용품 세트를 주었는데, 당시 얼마 되지 않았을 초등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앗아가는 1등 공신이었다. 필자도 스티커를 열심히 모았냐 묻는다면 정답은 단호하게 "NO!"다. 흔히 말하는 '안경잽이'였던 나는 공놀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스티커 뽑기 할 돈으로 사탕을 사 먹지 야구 용품 세트를 받아서 뭐해?' 라는게 나의 생각이었다.

친구가 열정적으로 모으는 걸 지켜보았을 뿐이었던 나에게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이었다. 스티커를 열정적으로 모으던 친구가 자신의 앨범에 스티커가 어느 정도 모이자 중복되는 선수 스티커를 나에게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왜 나한테 주냐며 버리려고 했지만, 친구는 "야! 아깝다 아이가~ 그냥 니 해라!" 라며 나를 설득했고, 쓰레기를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친구가 준 스티커를 책가방에 차곡차곡 모아 놓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 두 달이 지났을까 내 책가방은 붙이지도 않은 선수 스티커로 한가득 이었고 버리기도 아까운데 모아볼까? 하는 생각에 스티커북을 구입해서 빈 칸을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잘 안나오기로 유명했던 '이종범', '이승엽' 2명의 선수를 제외하고는 다 채워진게 아닌가? 비어있는 칸을 보면 메꾸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일까? 그 날부터 나도 스티커를 알음알음 사기 시작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얼마지 않아 친구에게도 없는 '이종범' 스티커가 나왔다. "이종범이다!!!!!!' 외치니까 모두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고, 친구는 물론 주위에 있던 6학년 형들도 와서 한번 보자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날 이후로 '이승엽'만 나오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스티커를 모았고, 나의 그런 열정이 하늘에 닿았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승엽' 스티커가 나왔다. 나는 순식간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너도나도 다 모은 스티커북을 보자고 달려들었고, 문방구 아저씨에게 야구 용품 세트를 받았을 때는 마치 엑스칼리버를 뽑은 아서왕을 쳐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어 어깨가 들썩였다. 야구 모자를 쓰고 방망이를 들고 집에 귀가한 나는 신나서 부모님께 자랑을 했다. "'이종범'이랑 '이승엽'이 잘 안나오는데, 이게 내가 뽑아서.. 주위에서 엄청 부러워 했다"고.. 꼬맹이였을 내가 어찌나 신나게 조잘조잘 자랑을 했던지,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는 대뜸 "아들! 혹시 이승엽 보고 싶나?" 물었고 실물로 '그 이승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신나서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야구와 사랑을 시작했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