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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싫어합니다.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ljw0427
작성일
2024-02-28 13:44
조회
104
“스포츠 좋아하세요?”
라는 물음에
선뜻 좋아한다 대답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어떤 스포츠나 팀, 선수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

혹은 정말 문자 그대로 스포츠가 싫어서,
스포츠와는 오랜 시간 담을 쌓고 지내온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이.
축구를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게 된 것처럼.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억지로 붙들 필요는 없으니까.

어느덧 나이가 서른 중반을 넘어서버린 지금,
나는 어쩌다 축구를 기피하게 된 걸까 기억을 더듬다보니 그 이유가 꽤나 속상한 것이었는데,
당시엔 그 속상함을 이겨내는 게 많이도 어려웠던 것 같다.

난 축구를 싫어한다.

딱히 처음부터 싫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엔 나 역시 점심 때마다 운동장으로 내달리던 아이들 중 하나였으니까.

운동을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공을 따라다녔던 건 친구들과 같이 뛰어놀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슛을 때려보긴 커녕 운동장 끝자락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할 때가 더 많았더라도, 내겐 그 시간이 참 즐거웠던 게 분명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교에 운동장은 겨우 하나인데, 어떻게 네다섯 팀이나 되는 아이들이 동시에 축구를 하겠다고 뛰어다녔는지 모를 일이다.
학년도 반도 제각각. 팀마다 숫자도 제각각.
골대 하나를 두고 골키퍼들이 서너명씩 서 있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기도 하다.

그러다 언젠가 한 번은 총알처럼 날아든 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버린 날이 있다.
묘사하기조차 어려운 얼얼함에 차마 눈 뜰 겨를도 없이, 어떤 처음 보는 자식이 달려와선 날 여기저기 패기 시작하는데, 이게 한 두 대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공으로도 맞고, 주먹으로도 맞고.
열살짜리 인생 중 난생 처음 두들겨 맞아본 순간이라 그런지 그 충격을 한동안 잊고 살기가 쉽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내가 얻어맞기 시작한 순간 친구 하나가 6학년 교실로 잽싸게 달려가서 우리 형을 데려왔단 사실이다.
평소엔 그저 동생 괴롭히기만 좋아하는 얄미운 형이라 생각했는데, 나 때린 놈 잡겠다고 달려오던 모습만큼은 그렇게 영웅적일 수가 없었다.

6학년은 무섭다.
날 때렸던 5학년 녀석은 운동장의 모든 초딩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 앞에 울며 무릎을 꿇었고,
나도 울면서 물어봤다.
얻어터진 이유는 들어봐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것 같았으니까.


우습게도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찬 슛이 막혀버린 게 화가 났던 거고.
예비 축구왕의 앞길을 내가 막아서버린 것 뿐이다.

난 다음 날부터 운동장에 내려가는 걸 관뒀다.
공이 무서워졌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닌데.
같이 놀던 친구들과도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나날이 소심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실컷 두들겨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경험이었고,
그 놈이 휘두른 주먹보다
내가 축구로 인해서 맞았다는 게 훨씬 마음 아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2002 한일 월드컵은 정말 대단했었다.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빨간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시절에도, 난 그 흔한 ”오! 필승 코리아!“ 한 번 외친 적이 없다.
오히려 4강까지 이어진 월드컵 열풍이 빨리 사그라들기만 바랐을 뿐이다.
어딜 가든 축구, 축구, 축구, 축구.
난 그 소리가 너무 싫고 지겨웠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선 입시 준비나 해야지,
축구 따윈 안중에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축구와의 악연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로.

2006년 봄, 우리 집은 부산에서 경기도로 이사했다.
새로운 집, 새로운 동네, 새로운 학교까지.
많은 것들이 달라진 환경에서 새학기를 맞이하다보니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부산 출신 전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어색한 표준어로 자기 소개하는 내가 대단히 촌스러워 보이진 않을까 내내 신경쓰였고,
친구 한 명 제대로 사귀지도 못한 상태에서 올라탄 수학여행 버스는 어색함을 우겨넣은 고문실 같았다.

전학 오자마자 수학여행이라니,
여행은 됐으니 그 기간 동안 그냥 등교해도 되지 않겠냐는 내 말에 담임 선생님께선
“걱정 마라. 가면 재밌을거다.” 라는 말로 일축하셨다.
사회 과목 선생님이셨지만 학생의 사회성은 미처 생각 못하신 듯 하다.

2박 3일이었는지, 3박 4일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이동하는 내내 어떻게 해야 이 여행이 빨리 지나갈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그 땐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인 데다가
난 그 흔한 엠피쓰리도, 전자사전도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어색함과 지루함을 친구 삼아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답이라 생각하고
긴 침묵의 시간을 받아들이려던 찰나였는데.

네가 나타나버렸다.

”스포츠..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 광고 배너 속 여자아이가
그 날의 너를 꼭 닮아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제주도의 푸른 밤, 호기심 많은 18세들은
선생님들 모르게 이 방 저 방, 은밀하게 ‘방팅’을 주선하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사투리가 듣고싶대. 빨리 와.“
라며 내 팔을 잡아끌던 녀석에게 떠밀려 결국 여학생 방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그 곳에 네가 있었다.

예쁜 반묶음 머리를 하고 고개를 돌리는 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수학여행 오길 잘했구나 싶었다.


아무튼 낯선 이들과의 ‘방팅’은 시작됐고,
규칙도 모르는 게임들과 함께 인디언 밥 맞아가며 이 자리 저 자리 옮겨대다보니 어느덧 네 옆에 앉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색하게 이야기 나누던 중에
네가 뜬금없이 내게 물었던 말을 기억할런지.


“축구 좋아해?”

축구라니,

어려웠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내가 축구를 싫어하는 건 분명한데,

첫 눈에 반한 여자 앞에선
솔직함은 절대 무기가 될 수 없음을 동시에 깨닫고 만 순간이었다.


“어. 좋아한다.“


어린 날의 상처를 호소하며 축구 타도를 외치던 시절들은 사라지고 난 스스로 축구를 꽤나 좋아하는 녀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좋아해? 잘됐다!” 라며 웃던 너.

뭐가 잘됐다는 건진 알 수 없었지만
그 날 한 가지 확실했던 건
내가 축구를 온 힘 다해 좋아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수학여행 이후로 우린 빠르게 가까워졌다.
서로의 집이 가깝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선
너와 항상 같은 마을버스를 타고 하교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서로의 하루를 나누던 시간으로 단 한 번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눈물겨울까.


넌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쩌면 축구가 아니라 데이빗 베컴이나 스티븐 제라드를 좋아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선수를 제일 좋아하냐는 물음에
농담 삼아 “마라도나”라고 대답하던 내 모습에서 넌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지.
내가 사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난 네가 좋았을 뿐이란 걸.

나도 한 가지 너 몰래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네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너를 차버린 연상의 남자친구 때문이란 걸 알았버렸다는 것이다.
아마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였겠지.
그리고 그 선배가 축구를 좋아하던 모습을 네가 여전히 닮아있던 거겠지.

난 남자로서도, 축구 팬으로서도, 얼굴도 모르는 그 선배를 이기고 싶어졌다. 향할 곳 없는 질투와 분노가 마구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맘때쯤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때문인지,
우리 학교에서는 “반 별 축구 대항전”이 열렸고,
그 열기가 월드컵만큼이나 상당히 뜨거웠던 게 생각난다.
아마도 여학생들의 응원과 함성이 남학생들의 가슴을 더욱 불타오르게 했을 것이다.
너도나도 한일전에 투입된 국대 마냥 비장함이 느껴지는 표정들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푹 빠졌다고 해도,
여느 스포츠 만화 속 주인공처럼 승리를 선포하거나 투지를 불태우거나 했던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한 반, 30여명의 학생들 중 엔트리에 내 이름만은 제발 빠져있기를 바랐으니까.

그리고 우리 반의 경기가 있던 날,
나는 후줄근한 체육복 위로 형광색 조끼를 걸쳐야만 했다.
심지어 내 것도 아닌, 잘 맞지도 않는 사이즈의 빌린 축구화를 신고.

운 한 번 지지리도 없지.
내가 교체로 투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정도면 내가 축구를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축구가 날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교체로 투입된 선수는 주목받게 되기 마련이다.
운동장에 발을 딛던 순간, 터져나오던 응원들이
당황스럽고 고마우면서도 원망스러웠다.

여기저기서 ‘부산’을 외치는 소리에,
난 언제까지 전학생이어야 하고 부산을 대표해야 하나 싶던 와중에

“이정우!“

”화이팅!!“

가슴 벅차도록 네가 소리쳤다.

정우는 이겨야 했다.
정우가 일단 뭐라도 해야 했다.
기막힌 플레이가 정우에게서 나와줘야 했다.

그런데 정우는 정말 축구를 못했다.

정우는, 나는.
스스로가 ‘개발’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그 날마저 개발은 아니길 바랐을 뿐이다.
정말 어디서 개를 한 마리 풀었어도 더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응원은 언제 응원이었냐는 듯 빠른 속도로 조롱이 되었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창피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도 더욱 필사적으로 달리던 중 한 녀석과 아주 제대로 부딪히기까지 했다.
그 친구 덩치가 거의 내 두 배는 됐을까,
탱크에 치인 듯한 느낌으로 흙밭에서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른다.

밀려오는 아픔보다 더 끔찍했던 건
조롱과 비웃음만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겪었던 악몽만큼이나 끔찍한 순간이었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뛰고 싶어서 뛴 것도 아닌데.
아파 죽겠는데, 놀림거리까지 되어야 하나.
축구만 하면,
축구만 하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부끄럽고 한스러운 감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보건실 문 밖에 서 있던 너에게까지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다친 덴 괜찮냐고 묻는 널 뿌리치고 돌아서면서
나는 우리가 서로 공유하던 시간들 위로 흙을 끼얹고,
결국엔 널 울리고 말았다.

내가 놀림받으며 넘어지던 시간부터
이미 너의 눈이 붉어져있었단 사실을 깨닫게 된 건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머뭇거릴 일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너에게 사과하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던건지.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날 조심스레 바라보는 너의 얼굴을 난 피해다니기 바빴다.

너를 정말 많이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당한 창피를 단번에 이겨내는 건
비겁해진 내 모습을 숨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되면서 우린 수험 준비로 더욱 멀어지기만 했다.
넌 공부까지 잘하던 이과생이라 학교와 학원 생활에 충실했었고,
난 공부보단 그림에 소질이 있었기에 미대 입시 학원을 등록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환경이 바뀌고, 내게도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는데
얌전히 그림 그리는 법만 배웠으면 좋았을 걸,
어쩌다 술담배까지 배우게 된 나였다.
한 번의 비행은 한 번으로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걸 몰랐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일탈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곧 무리지어 다니기 시작했다.
무리 중에선 내가 좋다는 여자아이도 있어서
한동안 같이 붙어다니기도 했다.
축구 이야길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학교 옆 작은 슈퍼마켓 뒤에서 그 여자아이와 함께 담배를 태우다 거짓말처럼 너를 마주쳤을 때.

그 때의 네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의 당혹감을 넘어선 나의 좌절감 역시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론 복도에서 마주치는 일이 생겨도 네가 날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그저 내가 널 뒤돌아 바라볼 뿐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의 마지막 일 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수능도 졸업도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만 다가왔다.

졸업식 날 늦은 저녁,
너에게서 마지막 문자를 받았다.

졸업 축하해.
나 너 많이 좋아했어.
잘 지내.

그 짧은 문자 때문에 펑펑 울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널 상처입힌 날 원망하지 못하고,
밤새 애꿎은 축구만 원망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스포츠는 망설일 수 있는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멈춰 있는 순간이 길면 길수록 패배만이 가까워질 뿐인 경기의 흐름.
나는 삶의 흐름 또한 스포츠를 닮아있음을 배우게 되었고, 그 흐름 속에서 여전히, 또 무던히 발버둥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리플레이로 해결되지 않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있다.
내겐 네가 그렇다.

난 축구가 정말 싫었지만
축구를 통해 너와 내가 함께 나눈 시간들은
그 어떤 날들보다도 소중했다는
늦은 고백을 남긴다.


2024년 2월.

너의 이름처럼
어린 아이같은 천진함이 빛나던


소아에게.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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