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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의 심호흡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정낙민
작성일
2024-02-28 21:32
조회
96
“수영은 힘들지 않겠어요? 운동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면 오히려 간이 피곤해서,”
“괜찮아요. 내가 알아서 할게.”
아내의 말이 길어질듯 하자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솔직히 나도 지금의 체력에 비해 수영이 좀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있기 보다는 직접 부딪쳐 보기로 한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어린 시절 물살을 헤치며 거침없었던 질주의 본능을 다시 품고 싶었다.
까까머리로 친구들과 어울려 온 동네를 뒤잡으며 뛰놀던 어린 시절, 우리들이 아지트였던 공원에는 야외수영장이 있었다. 그 때만해도 수영장은 또 다른 부의 상징이었다. 수영복에 시간별로 이용이 가능했고 수영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야외수영장은 점심 때쯤 관리 아저씨가 나와 입장료를 받았는데 별다른 제재가 없어 우리는 제일 먼저 들어와 맨 마지막에 나갔다. 대신 수영장 주변의 청소를 하는 것으로 특혜를 받았다.
나를 비롯한 3명의 단짝 친구들은 여름이면 아침을 먹자마자 수영장으로 달려와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놀기 시작했다.
수영복 대신 반바지를 입고 좀 이른 시간에 입술이 파랗게 질리면서도 우리는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주인인냥 마음껏 즐겼다.
처음에는 그저 물장구를 치는 것이 전부였지만 점차 물에 뜨게 되었고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제법 속도를 내며 물살을 가르고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대회에 나선 선수들처럼 순위 경쟁을 했는데 내가 늘 1등이었다. 그래서 별명은 물개였다. 그 누구보다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마치 물개를 닮았다며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출발과 함께 온몸을 쭉 뻗어 물로 뛰어들 때의 짜릿함은 물이 몸에 닿을 때의 쭈뼛함으로 이어지고, 물속으로 몸이 가라앉을 때의 푸근함은 찰나이지만 늘 온 몸 구석구석을 푸르름으로 채워주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멀리,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손으로 물을 차고 앞으로 나아갈 때는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었다가 목적지에 도착해 터치하고 나면 그제야 휘몰아서 내 쉬는 숨은 가슴 벅찬 울림이었다.
물속에 들어서면 와 닿는 특유의 물내음은 늘 새로웠고 물살을 가르기 전까지 우리는 그 새로움으로 배를 채워야했다. 그리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리는 파랗다 못해 검붉은 입술로 물먹은 솜이 되어야 물 밖으로 나오곤 했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수영장에서 살았던 탓에 두 해의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수중에서 턴도 몸에 익혀 팀을 짜서 계주도 할 수 있었고 한쪽에 설치되어있는 다이빙 바에 올라 어설픈 다이빙도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물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수영선수가 되기로 치기어린 맹세도 했다
그 후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수영과는 거리가 먼 날을 보냈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로 일이 삶의 중심이 되었고 다른 것은 삶의 곁가지에 불과했다. 나의 건강도.
지금 나는 운동이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제 작년 겨울, 느닷없는 암진단을 받았고 지금까지 입, 퇴원을 반복하며 살기위한 각종 시술을 받고 있다. 나의 삶은 모든 게 멈춰버렸지만 무정한 세상은 변함없이 오늘을, 내일을 보내고 열어가고 있다.
멈춰버린 날들 속에서 비릿한 물내음이 되살아났고 나는 용기를 내어 수영장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날들을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도 맥이 툭 풀려 흩어져버리는 헛헛함, 그 자리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채우고 싶은 바람이다.
두려움보다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버둥거리며 물과 씨름하던 막무가내 근성을, 가르는 물살보다 먹는 물이 더 많아 배불뚝이가 되어도 좌절보다는 웃음으로 넘기던 넉넉함을, 까까머리의 거침없는 용기도.

가슴을 쫙 펴고 물개의 심호흡을 내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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