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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작은 야신 (최종 수정본)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문현빈
작성일
2024-02-28 23:37
조회
65
무엇을 계기로 축구를 좋아하고 시작했었는지 인제 와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나도 축구 클럽 다니면 안 돼?"

하지만 확실한 것은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자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던 부탁이 축구와 관련이 있을 정도로 나는 빠져있었다.

"축구 클럽 다닐 돈 없어 안돼"

어머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하였다.

"이미 학교에서 방과후수업으로 축구하잖아"

어머니의 말대로 나는 당시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매주 수요일에 운영되는 작은 축구 수업을 받고 있었다. 방과후수업은 기본적으로 전문적인 선수 육성보다는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의 조기 축구회 같은 느낌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당시에 나는 진심으로 장래의 프로 축구선수가 되기를 희망했고 그것을 축구 클럽에 보내주면 안 되겠냐는 질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꿈을 향하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어머니가 축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나의 제안을 받아주지 않을 걸 조금은 예상했던 걸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당찬 거절의 말을 듣고도 큰 동요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축구는 취미로만 해야 해 알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대답이 내게서 꿈을 빼앗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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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는 인생의 꿈으로서가 아닌 취미로서의 축구를 즐기는 것이 전부였다.

매주 수요일 방과 후 축구부에서 친구들끼리 팀을 나누고 그저 무작정 시합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슛은 물론이며 패스, 드리블, 트래핑, 침투 등
시합에서 필요한 기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와 친구들은 일단 볼을 건드리고 보는 무작전 무기술의 동네 축구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자연스레 감각이 좋은 친구들과 그렇지 못한 그룹이 나뉘었다.

초등학교 방과 후 축구의 포지션 결정은 단순했다. 감각이 좋은 그룹에 속하는 친구들은 골을 넣는 공격수 그리고 상대적으로 발재간이 없고 딱히 특출난 기술이 없는 친구들은
수비수나 골키퍼를 맡았다.

나는 후자에 속했었다. 축구를 하고 싶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단 열의만 가득했을 뿐 정작 볼을 다루는 능력의 재능은 0에 수렴하였다.

나보다 실력이 월등한 친구들 앞에서 아무런 기술도 가지지 못한 난 뒤에서 그들의 드리블과 슛을 구경할 뿐이었다. 감각이 좋은 친구들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공격수의 자리에서 여러 번 공을 만지고 차는 것을 반복하기에 자연스러운 발전이었다. 그에 비해 공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수비수들은 공격수 그룹과의 실력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져만 갔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은 계속 흘렀고, 나는 여전히 수비수에 그쳤다. 처음에는 공격수의 자리를 꿰찬 친구들을 시샘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친구들은 착실히 실력을 쌓아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감히 그들을 뛰어넘으려는 의지조차 작은 불씨 하나 남기지 않고 연소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 재능있는 친구들에게 이길 수 없다.'

그러한 생각이 들 때쯤 축구를 하며 무엇을 위해 공을 차고 있는 걸까?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아침 기상하고 매일 밤 잠을 자듯이 한결같이 수요일의 방과 후 축구 수업에 나가고 있는 자기 모습을 깨달았다.

"드리블을 어떻게 해야 2명 3명씩 제칠 수 있는 거야?"

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나는 재능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하였다.

" 난 아무리 해봐도 잘 안돼서..."

처음에는 자신과 상대의 격차를 인정하고 저자세로 질문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했지만 의외로 한 번 말하고 난 다음부터는 어느새 마음 편히 질문하고 있었다.

"드리블? 드리블은 그냥 여기로 가면 안 뺏기겠다 하는 곳으로 끌고 가면 되던데? 그냥 감인 것 같기도 하고"

돌아온 대답은 그동안 고뇌의 시간이 마치 헛수고였다는 듯이 잔혹한 답변이었다.
내가 수년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었던 것. 그것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나를 이해해 줄 수 없었고, 나 또한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감이라는 말. 그 하나의 차이로 나와 그 친구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더 이상 축구에 대한 어떤 의지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서서히 축구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축구를 그만둘 예정이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학기마다 돈을 지불하며 다니던 방과후수업은 기간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남은 방과후수업만 나가고 완전히 축구공과 멀어지기로 결심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축구를 바로 그만두지 않았던 선택이 나를 크게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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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좀 해줄래? 손가락이 꺾인 거 같아"

평소에 골키퍼를 도맡아 하던 친구의 부탁이었다. 예상치 못한 부상이었기에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장갑 냄새가 좀 심하네'

친구의 골키퍼용 장갑을 건네받고 처음 착용했을 때 나의 감상은 친구의 땀 냄새가 장갑의 라텍스 성 소재 때문에 안쪽에서 그대로 고여 악취가 난다는 것이었다.

"미안 막아줘!"

수비수가 막지 못하고 골대로 날아오는 슛을 무작정 쳐냈다.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지만, 여러 번 반복하고 나니 골키퍼로서 어떻게 움직이고 슛을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감각을 익혔다.

"나이스~!"

"오 이걸 막네?"

또 골키퍼를 하며 새롭게 느낀 것은 수비수를 전전할 때와는 달리 폭넓은 시야가 생기게 되었다. 그라운드의 모든 선수가 한눈에 들어오고 공격수들이 골을 넣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공간에서의 슛을 노리는지 읽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누군가나 막을 수 있을법한 전방으로 오는 공을 선방하고, 다음에는 측면 땅볼로 오는 공을 다리로 걷어내고, 다음에는 쉽게 날아오는 공을 완벽하게 잡았다.

묘한 기분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집중도가 상당히 다르게 느껴졌다. 슈팅 방어에 성공할수록 다음에는 어떤 슛이 올지 어떻게 막아야 할지 상대 공격수가 어디로 침투해 올지
올라오는 크로스를 뛰쳐나가 펀칭으로 쳐낼지 캐치가 가능한 슛인지 등을 생각하며 오로지 공을 막아내는 것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마치 시합의 주역이 된 느낌이었다. 상대 공격수들이 나에게 막혀 골에 실패하고 좌절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다음에도 네가 골키퍼 하면 되겠다."

"맞아 네가 다음에 또 해"

나에게는 공격수로서의 감은 없지만 골키퍼로서의 감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감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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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골키퍼 데뷔전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 실내화 가방을 축구화 신은 발로 대번 차대며 한 친구가 내게 질문했다.

"근데 아까 슛은 다 어떻게 막은 거야? 어디서 배운 거 아니야?"

순간 내게 조언해 주었던 공격수의 재능을 가진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배운 적은 없고 그냥 감으로 막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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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부터는 골키퍼 자리에 내가 고정되었다. 날이 지나며 경험이 쌓일 수록 나는 점점 더 골키퍼로서 발전했다.

공격수와 1대1 상황에서는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 슈팅각을 줄인다. 측면에서 볼을 몰고 오는 경우에는 몸을 공 쪽으로 틀어 골대와의 거리를 한 팔로 재면서 슈팅각을 차단한다.
땅볼로 굴러오는 슈팅은 잡기가 고되기 때문에 최대한 발로 차내야 한다. 우리 팀 수비수가 보지 못한 상대편 공격수의 움직임을 빠르게 브리핑한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은 최대한 몸쪽으로 끌어안아 잡아야 한다.

골키퍼로서의 기술을 갈고닦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아무리 골키퍼의 재능이 있었다 한들 모든 슛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욱 골을 먹힐 때마다 한 골 한 골 실점을 했을 때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재현하여 그 안에서 자신이 막을 수 있었던 최선의 판단이 무엇이었을지 고뇌했다.

골키퍼의 재능과 더불어 경험이 쌓여 발생할 수 있는 대부분의 상황에 대한 판단 능력까지 겸비한 나는 친구들에게 인정받았고 팀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막을 수 있지? 진짜 야신이네"

야신
친구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축구의 역사상 골키퍼의 포지션으로 유일하게 발롱도르를 받은 전설적인 축구선수이다.
그런 위인의 이름이 나의 별명이 되었다는 것이 모두에게 내 실력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는 곧 야신이라는 칭호에 걸맞게끔 실전에서 이를 증명해 내야 하는 부담으로도 다가왔다. 하지만 그 부담이 나를 궁지로 몰아버린 덕에 나는 더욱 필사적으로 기량을 높여나갔다.

"뭐야 이걸 이렇게 막는다고?"

"손가락까지 써서 막아버리네"

날아오는 공이 손에 닿을락 말락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손가락 끝을 걸쳐서 아주 약간 궤적을 틀어 실점을 막을 정도로 지독하게 슛을 막아내었다. 내가 부러워하는 재능을 가졌던 친구들은 이제 나에게 골을 막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느덧 내가 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던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 나는 팀의 일원으로서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맴버 중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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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때는 우리 야신만 있으면 우승은 확정이지~"

우리 학교의 방과 후 축구부에서는 매년 겨울에 한 번 열리는 큰 축구대회가 있었다. 각 학교의 대표들이 모여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대회였다.
당시 내가 야신이라는 칭호를 받고 골키퍼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했던 시기는 6학년 때였다. 5학년 때까지의 축구부 대회는 모두 수비수로서 출전하였기에 골키퍼로서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이 시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4학년 때는 3위 , 5학년 때는 2위였으니까 진짜 이번에는 우승하겠네"

우리 학교 축구부의 수상 경력이었다. 3위 1회, 2위 1회 유일하게 우승 트로피만 들어보지 못한 친구들이었기에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대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승할 생각으로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마침 골키퍼로서 활약상을 펼치던 나에게는 당연히 친구들로부터 기대를 받는 신세였다.

"이번 대회 주장은 야신이 하는거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바로 작년 대회까지 주장은커녕 교체 선수를 간신히 면하던 처지였던 나에게 주장 자리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야신 아니면 누가하겠어?"

축구부의 전 맴버가 나를 주장으로 기용하는 것에 대해 일말의 이견조차 없는 분위기였다.
순간적인 당혹감이 찾아들었다. 불과 1년 전의 자신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스스로 축구부에 나가지 않으면 그 누구도 데려가지 않았던 때, 경기가 끝날 때까지 활약은커녕 제대로 된 볼 터치도 하지 못했던 때, 나의 실수로 실점을 허용했을 때, 꼭 뛰어넘고 싶었던 공격수 친구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하고 허무하게 돌파당했던 때, 골을 넣어보기 위해 공격을 해봤지만 제대로 된 패스조차 하지 못하고 볼을 빼앗겼을 때.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던 초라한 과거와 주장직에 떠밀리며 추대받는 지금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찰나의 순간 경황망조하였던 것은 아마 이질적으로 다른 두 시점의 이미지의 괴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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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1년에 단 한 번 개최되는 청소년 축구대회장으로 가는 시간의 아침 공기는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지만서도 비몽사몽인 몸을 깨워주는 각성제의 역할을 하였다.

대회장에 도착하면 하나둘 평소에 마주하던 익숙한 친구들의 얼굴을 찾기 바쁘다. 평소에는 상대 팀이 되어서도 경쟁하는 축구부 친구들이지만 대회 날만큼은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아군이 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축구부원 전원이 모이고, 언제나 트레이닝 복을 입고 다니며 촌스러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던 담당 코치님은 정장을 빼입은 채 왁스로 한껏 꾸민 세련된 직장인 스타일의 머리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자 주장은 완장 차줄 테니까 앞으로 와봐"

코치님의 앞으로 나아가자, 왼쪽 팔에 완장을 둘러주었다. 주변에서는 떠받들어주듯 일렬로 선 채 내 뒤에 위치한 친구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완장을 둘러주며 코치님은 시합 입장 시 제일 선두에서 입장할 것과 시합의 공볼 정하기를 위한 동전 던지기에 대표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 상기시켰다.

시간은 흘러 예선 첫 시합이 시작되었다. 참가하는 학교의 수는 16개교. 각각 A조부터 D조로 각 조에 4개의 학교가 시합하여 승점이 가장 높은 상위 2개교가 본선인 8강으로 진출한다.

항상 친구의 등을 보며 입장했던 대회와는 달리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내 뒤를 따라 걷는 상황이 되었다. 정말로 내가 팀의 주장이 되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합은 시작되었고, 첫 시합은 상대의 유효슈팅을 거의 허용하지 않으며 4대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승리하였다.

대회의 예선전 특징은 일반적으로 같은 조에 강팀이라고 여겨지는 학교와 약팀이라 여겨지는 학교의 기량 차이가 꽤 컸다는 점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도 우리 학교는 강팀에 속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똑같은 강팀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면 4대0이라는 스코어가 나오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확률적으로 4개의 학교가 무작위로 편성된다면 평균적으로 한 조에 강팀이 2팀 정도가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같은 조에서 우리를 제외한 같은 조의 강팀 학교가 어디인지를 빠르게 파악했다.

그렇게 예선전 2번째 시합이 시작되었고, 이번 역시 내가 큰 활약을 할 것 없이, 5대0으로 대파하여 사실상 3회전 시합의 결과에 상관없이 8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확실히 대회 첫 시합 시간 동안 굳어 있던 몸을 풀어내고 제대로 기세를 탄 것 덕분에 우리는 예선전에서 심적으로 부담이 컸던 본선 진출에 대한 걱정을 빠르게 떨쳐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회전에서 질 생각 따위는 없었다. 제대로 흐름을 탄 팀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기 위해서 우리는 꼭 3회전에서 이기고 8강에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3회전이 시작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같은 조에 있는 강팀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3회전의 상대였다. 상대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가 대파한 두 학교에 승리하였기에 8강 진출은 확정된 상태.
이번에는 전반전 동안 서로가 단 한 번의 골도 넣지 못하고 허용하지도 않은 채 마무리되었다. 예선전 3회전이 되어서야 나는 조금씩 활약을 보일 수 있었다. 강팀이니만큼 유효슈팅을 적지 않게 허용했지만 막기 어렵다고 생각할 만한 슛은 없었기에 안정적으로 방어해 냈다.

하프타임 때 친구들은 이미 강팀이라는 것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전반이라는 시간 동안 리드를 잡지 못한 것에 적잖게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허공을 바라보거나 다른 팀의 시합을 멍하니 눈으로 좇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왼팔의 완장이 눈에 들어왔다.

"애들아 후반전에 무조건 1골만 넣어줘"

지금 우리 팀을 이끄는 사람은 나였기에 여기서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무작정 생각나는 문장을 뱉어버렸다.

"어차피 상대 슛은 내가"

어떻게 되먹은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말고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다 막을 거니까"

혹여나 먹히기라도 하면 어쩔 생각이었는지 다짜고짜 무실점 선언을 해버렸다.

나의 선언이 끝나기 무섭게 하프타임이 종료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나의 말이 전환점을 주는 데 조금 도움이 되었던 걸까?
확실히 전반전보다 점유율은 우리 팀이 앞서는 느낌이 있었지만 상대 편은 어떻게든 슛을 막아내었고 좀처럼 골은 터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팀의 리드로 경기는 이어졌으나 남은 시간 2분 직전까지 유효슈팅은 계속해서 만들어냈지만 정작 들어가질 않았다.
그리고 경기의 막바지 우리는 코너킥을 얻었고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음으로 최후방 수비수 4명 중 2명까지 공격에 합세하여 마지막 골 기회를 노렸다.

코너킥이 올라왔고 상대 골키퍼의 펀칭으로 공은 하프라인까지 떨어졌다. 이때 상대 최전방 공격수가 전력 질주를 하며 골을 쫓았고, 어차피 코너킥 상황이 끝나면 경기가 끝날 거로 생각했지만 심판의 휘슬이 울리지 않았다. 결국 최후방의 있던 수비수들을 스피드 하나로 따돌리며 아슬아슬하게 슛을 찰 수 있는 각도까지 만들어졌다.

중거리에서 찬 슛은 무섭게 힘이 실려 날아왔고, 내 머리보다 살짝 위쪽으로 날아오는 볼을 간신히 한쪽 손으로 쳐내어 골대를 벗어났다. 슈팅을 막은 후 손가락이 살짝 꺾였던 건지 조금 저릿한 감이 남았다.

결과는 결국 0대0 무승부로 끝났고, 상대와 우리 모두 2승1무로 승점은 같았지만, 골득실로는 우리 학교가 더 우위였기 때문에 조 1위로 8강으로 진출했다.
내가 선언한 대로 어찌저찌 무실점 공약은 지켰으나 끝내 득점을 따내지 못한 것에는 꽤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좀 더 주장으로서 제대로 된 격려를 해주지 못한 탓일까? 하는 마음도 남았지만, 처음으로 리더다운 행동을 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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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본선전부터는 긴 휴식을 취한 후 대회가 재개되었다. 이제부터는 약팀에 속하는 학교는 대부분 탈락했을 시기였기에 단 한 번의 실수로 경기의 판도가 판가름 나는 팽팽한 싸움이었다.
8강전에서 우리는 0대0의 스코어로 기나긴 공방전 끝에 결국 연장전까지 가게 되었고, 연장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해 시합은 승부차기로 정하게 되었다.

나는 총 3번의 슈팅을 막아내었고 우리 팀은 총 3번의 슛해 한꺼번에 성공하여 경기 내용에서는 비등비등했지만, 승부차기에서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며 간신히 준결승에 진출한다.
친구들은 8강전의 경기가 내가 골키퍼를 맡았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경기라고 평가했다.

준결승 상대는 예선전 3회전에서 만났던 학교였다. 이기지 못했던 팀을 준결승에서 만난 상황 이번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둘 중 한 팀은 떨어져야 한다.
이미 8강전을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진행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교체 카드를 활용하여 겨우겨우 밸런스를 맞춰가며 경기를 진행했다.

그리고 8강전에서 승리하여 다시 기세가 오른 덕분인지 우리는 후반전이 시작될 때쯤 2대1로 리드를 확실하게 잡았다.
이제 버티기만 하면 결승으로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 이라고 생각한 순간 순식간에 상대 공격진이 우리 팀의 수비진을 완벽하게 허물고 동시에 내 앞으로 3명의 공격수가 공을 몰고 3 대 1의 압도적인 대치 상황을 만들어냈다. 슛일까? 패스일까? 고민하며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아 다리가 굳어있을 때 패스가 아닌 반박자 빠른 슛으로 대응해 보지도 못하고 동점 골을 허용했다.

분명히 확연하게 내가 불리한 상황이었음에도 바로 움직였다면 막을 수 있었을 볼이라며 자신을 자책했다. 나의 수비 실패에 2대1로 빠르게 승리로 끝낼 수 있던 승부가 연장전을 향했다.
연장에 들어선 우리 팀의 수비진들은 동점 골을 내주었을 당시 당해버린 다수 대 1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한 명씩 공격수를 전담하는 맨투맨 작전으로 완벽하게 수비해 내며 중거리에서 오는 슛들은 내가 안정적으로 잡아내었다.

내가 처음으로 자존심을 굽히고 어떻게 하면 드리블을 잘할 수 있냐는 질문에 그저 감이라 대답한 친구. '그 친구'는 8강전을 풀타임으로 소화한 탓에 결승에 대비하여 준결승에서 완전한 휴식을 취하게 해줄 예정이었지만 연장전으로 이어진 승부에 결국 코치님은 '그 친구'를 마지막 교체 카드로 사용하였다.

마지막 교체카드사용으로 도박을 걸어본 셈이었지만 '그 친구'는 계속해서 돌파를 시도하다 결국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깔끔하게 이를 성공시켰다.

결과는 연장 후반을 마친 3대2 우리 팀의 승으로 간신히 끝났다.

이제 남은 시합은 결승전 단 한 경기.
상대방은 전년도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강팀 중의 강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우리 팀은 8강전과 준결승을 모두 연장전까지 끌고 가며 간신히 이기고 올라온 그야말로 만신창이의 상태였다.
이미 어느 정도 체력적으로는 불리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경기는 시작되었다.

우리 팀도 상대 팀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경기였다. 나를 포함한 필드 위의 모든 선수가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준결승까지의 시합을 통해 골키퍼로서의 감각이 최고점에 달한 나는 평소라면 잡지 못하고 쳐냈을 볼마저 캐치해낼 정도로 달아올랐다.

한 번 두 번 골을 막아낼 때마다 필드 플레이어들이 마음 놓고 골을 향할 수 있었고, 최후방에서 모두의 위치를 바라보는 나는 입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브리핑하며 골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다.

공격과 방어가 치열하게 오가며 서로가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힘을 짜냈다.

상대편이 코너킥 기회를 얻어냈고,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공격을 시도하기 위해 올라왔다. 코너킥은 높게 띄워졌고, 나는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재빠르게 캐치하였다. 도약하기 전 순간적으로 제일 최전방에서 역습을 준비하는 '그 친구'를 보았고, 나는 상대 공격진들이 수비에 가담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곧바로 포물선을 그리는 궤적으로 공을 날렸다.

감각적으로 드리블을 한다던 '그 친구'는 최후방에 있던 수비수를 치고 달리기로 반쯤 제친 상태로 다소 불안정하지만 최소한의 슛을 하기 위한 동작을 갖춘 채 공을 골대로 밀어 넣었다.

결과는 1대0으로 리드. 이제 체력적으로 완전히 한계가 온 '그 친구'는 결승전에서 득점을 만들어내는 업적을 달성한 후 수비수와 교체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득점을 포기하고 지금의 스코어를 지키기 위한 교체였다. 수비수 라인을 4명에서 5명으로 늘리며 우리는 필사적으로 최후의 방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상대는 작년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흩트렸다면 몇 번이나 골을 먹힐 위험을 있었을 정도로 악착같이 슛 찬스를 만들어냈다.

같은 팀의 공격수들까지 모두가 수비에 올인하며 후반전의 추가시간 마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슬아슬한 시간 초과에 승리가 확정되었다며 잠시 긴장의 끈을 놓은 것이었던 걸까?
우승 트로피가 바로 눈앞까지 온 상황에서 우리 팀의 수비수가 안정적으로 걷어낼 수 있는 공을 골대 코앞에서 빼앗겨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순식간에 세상은 나와 상대편의 최전방 공격수 둘만의 공간이 되었고, 주변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1대1 상황은 수도 없이 겪어왔다. 하지만 그 익숙한 순간이 대회 결승전에서 1대0으로 앞서고 있는 후반전 추가시간에 닥쳐왔다.

자동으로 몸은 슈팅 각을 좁히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지금 골을 허용하고 연장전으로 이어지면 체력적으로 압도적 열세에 있는 우리가 이길 방도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막지 못한다면 우승 트로피는 들어 올릴 수 없게 된다. 3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이번에는 준결승 때와 달리 나의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해 버렸다. 상대 공격수의 발이 슛하기 위해 멈춘 순간 그대로 몸을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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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친 후,
겨울 방학 동안 내신 관리를 위한 공부로 정신이 없는 나는 축구를 했었던 시절의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메아리 되어 울리는 운동장이 아닌 도립 도서관의 고요한 정적 속에서 샤프와 종이가 맞닿는 미묘한 데시벨의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는 장소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는 자기 모습을 과거의 자신이 상상이나 했겠는가?

과거의 야신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던 그때. 대회 종료 직후의 푸르른 하늘 아래 시상식에서 직접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박수와 환호를 받던 찬란했던 순간은 어느덧 두뇌의 해마 속에서 조금씩 색채를 잃어가고 있었다. 다만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이 2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대회 종료 직후 결승전 시합에서 막판에 막아낸 볼이 손가락을 강력하게 꺾어버려 시상식 이후 바로 병원으로 직행하여 검사를 받고 깁스를 하게 되었던 것.

상당히 심한 부상이었기에 철심을 박는 수술까지 진행되어 난 그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축구 금지령이 떨어졌고,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부터 축구는 그만두었고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회의 우승 소식을 들은 학교 교장선생님이 축구부 인원들에게 짜장면을 사주시겠다고 해서 단체로 교장실에 초대되었던 이야기인데,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주장이었던 내가 대표로 교장선생님께 인사 구호를 외치게 되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전에서 혀를 절어버리고 말아 친구들에게 일주일 내내 조리돌림을 당했던 연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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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아 동생 졸업식 갈 거지?"

나에게는 4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고, 동생 역시 내가 나왔던 초등학교에 다니며 어느새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응 갈게"

동생의 졸업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오랜만에 모교가 어떻게 변했는지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도 남아있었기에 졸업식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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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한창 졸업식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던 그때 생리현상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며 나는 어머니에게 빠르게 말하고 홀로 강당을 빠져나왔다.
막상 방문해 보니 당장 어제 다니던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복도를 가로지르며 어렵지 않게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았다.

어느덧 졸업식 노래가 끝나고 고요해진 공기 속에서 학교 회장이라고 생각되는 어린 목소리가 마이크를 잡고 연설문을 읊조리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강당 밖은 매우 고요하여 나도 모르게 괜히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던 도중 복도와 복도를 잇는 중앙 홀에 도달했다. 여러 가지 상패와 사진이 걸려있었고 그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홀 정중앙에 위치한 유리 재질로 된 케이스였다. 그 안에는 앞 글자는 빛에 반사되어 잘 안 보이지만 뒤의 2글자는 우승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익숙한 얼굴의 한 초등학생이 한가운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진이 옆에 있는 것을 눈치챘다.

시합 직전 원형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모여 화이팅을 외치던 친구들의 얼굴, 경기가 끝난 직후에야 비로소 눈치채는 땀으로 흥건한 유니폼, 국가대표 선수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해보겠다고 이빨로 물어봤던 매달의 맛, 다이빙을 뛰어도 전혀 아프지 않았던 청록 빛깔의 인조 잔디 같은 서서히 잊혀 가고 있었을 터였을 기억들이 리플레이되듯 번뜩였다.

강당으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희미해져 가던 기억을 읽어 내려간다. 그 무수히 많은 기억의 파편들 속의 여러 일들이 뇌 내에 이미지 정보로 흘러갔고, 당시의 녹음되어 있던 친구들의 목소리 또한 자동 재생해 주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좋았던 울림이었던 '야신'이라는 음성이 회상 속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영원히 새겨지리라 생각했던 야신이라는 별명은 나만이 아는 신화가 되었다.
수요일의 방과 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한 명의 작은 야신.
수요일의 작은 야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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