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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게 해주었던 달리기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아픈건싫어
작성일
2024-02-29 10:04
조회
100
남들이 말하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아빠,
세상 모든 문제는 나 때문이라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

이불을 멍석처럼 돌돌 싸서 마구잡이로 밟고 눈에 보이는 아무 길쭉한 것 -죽도, 골프채, 야구방망이, 먼지털이- 로 개 패듯이 나를 패던 것,
벨트를 채찍처럼 사용하여 사정없이 내리친 것.
물건을 던지고, 접시가 와장창 깨지고. 식탁 위 유리가 깨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어떤 날에는 칼을 던지기도 하였다.


생각해 보면 정말 하찮은 이유였다.

밥상을 나르다가 간장을 쏟아서.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말투가 싸가지가 없다고 느껴져서.
실내화를 하나 더 사서.
설거지를 완벽하게 끝내지 않아서.
내 친구와 전화 통화를 너무 길게 해서.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을 하는 것이 꼴 보기 싫어서.

아빠가 사업에 실패해서 집에 빚이 생겨 급하게 도망가게 되는 그날에도, 엄마는 이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라 하였고,
잦은 이사, 또는 돈이 너무 없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할 때면, 이건 다 너가 잘못 살고 있기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를 이해(?) 시켰다.
아빠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 역시 내가 얌전하지 못하고, 남자들 앞에서 헤프게 웃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초등학교 앞에서 병든 병아리를 사서 애지중지 닭으로 길러내면
동네 개장수에게 팔았고,
유일하게 피아노로 내 마음을 표현할 줄 알았는데,
피아노도 팔아버렸다.

내가 마음을 줄만한 모든 것들이 족족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부모는 이웃 누군가에겐 세상 고상한 척, 성인 군자인 척 보여야 했고 사람들 앞에서는 좋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여름에 두들겨 맞을 때엔 교복으로 가려지는 부위, 허벅지, 몸통을 집중적으로 맞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늘 웃어야 했고, 우리 집은 그럼에도 '화목하다.' 라고 사람들에게 말해야 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 라고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달렸다.
정말 죽을 것 같이 마음이 조여와서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그냥 달렸다.

치마가 짧아서 창녀 같다고, 사창가로 가라는 막말을 들을 때, 집에서 나와 달렸다.
달리다가 신발이 불편하면 신발을 벗어 들고 양말만 신고 달렸다.
머리를 다 뽑아버리겠다고, 가위를 들고 쫓아오는 엄마가 무서워서 그길로 또 나와 달렸다.
식칼을 던지면 또 나와서 달려 나와 한참을 뛰다가 눈에 보이는 아무 교회로 들어가서 광광 울었다.

뛰며 걸으며 눈물과 콧물을 먹으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전혀 다른 동네가 나왔다.

그렇게 달리면서 보이는 낙엽이 예쁘다는 생각,
바람이 참 따뜻하네. 하고 위로받기도 하였다.
죽을 것 같은 모든 순간에서
죽을 것 같이 정신없이 마구 뛰다 보면
속상함, 분노, 억울함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그나마 진정되었다.
또 그렇게 뛰다가 보면 무리를 지어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다시 지옥 같은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죽을 것 같이 조여왔던 그 모든 상황이 그나마 견뎌질만 할 것 같았다.

그런 집에서 나는 목숨을 다하여 견뎌왔다.


지옥 같던 10대를 지나 드디어 독립을 하게 되었다.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고,
적당히 외로워도,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이 엄마 아빠 같지 않다는 것, 최소한 나를 해하지 않는 것에 감사해하고 있다.
나와 눈만 마주쳐도 골골송을 부르며 다가오는 고양이도 내 곁에 있다.


이제는 정신없이 도망 나와 달리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가 하루아침에 개장수에게 팔아넘겨질 이유도 없다.
월급을 받아 피아노도 샀다.
그런데 헬스장에서 러닝을 뛸 때면,
많이 먹어서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뛸 때면. 이상하게 그때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고인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 없이 마냥 밝은 줄로만 안다.
웃음 뒤에 어떤 과거가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사랑만 받으며 귀하게 자랐을 것 같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독기가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나는 모르는 척 그냥 웃는다.

누구는 스포츠가 단순 게임과 오락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달리기는 숨구멍이었다.
나를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유일한 지푸라기였다.
나의 한계를 다시 기록해 주며, 나를 위로해 주었던 평생을 함께할 친구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숨겨왔던 나의 스포츠 이야기.
나의 달리기.



나는 그래서 언제 쯤이면 달리면서 울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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