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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로빅으로 되찾은 건강

이벤트/백일장
작성자
nrz60216
작성일
2024-02-29 15:02
조회
38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유방암입니다. 종양 크기는 2㎝이하이지만 림프절로 전이가 된 것 같네요. 왼쪽 유방 전절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 유방암이라는 반갑지 않은 친구가 찾아왔다. 가슴에 이어 림프절까지 파고들었으니 인정머리라곤 전혀 없는 암세포다. 며칠 지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단순한 가슴 통증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기세등등해지다가 결국 평온했던 동생의 삶에 먹구름을 몰고 온 것이다. 암수술 후 동생에게 남겨진 건 건강이 아니라 ‘방사선 치료 35회’, ‘항암화학요법 진행 8회’, ‘항호르몬 치료 5년’ 등과 같은 무시무시한 치료과정뿐이었다.
동생은 수술 후 병원을 가는 것 말고는 일체의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자기 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방사선 및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창백해진 얼굴, 살이 빠져 메말라버린 몸, 거뭇해진 피부 등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동생의 대인관계와 활동반경이 극단적으로 좁아지는 게 걱정이 됐던 나는 유방암 관련 인터넷 지역카페를 만들었다. 동생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환우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병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도 얻기 위해서였다.
카페 개설 후 서너 달 간은 5명 정도의 회원이 전부였지만, 6개월이 지나자 50명 정도로 늘어났다. 나는 카페를 처음 개설하면서 계획했던 대로 정기 모임을 추진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모임은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스트레스를 해소하자는 취지였다.
첫 모임에는 10명 정도가 모임에 참석했다. 온라인과 달리 오프라인 모임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투병 중인 자신을 드러내기 부담스러워 하는 이도 있었다. 참석한 이들은 유방암이 재발해 수술을 앞두고 있는 환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우, 언니와 함께 유전성 유방암을 앓고 있다는 환우까지…. 각자 곡진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자매는 같은 아픔을 가진 회원들과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각자의 운동법, 식이요법 요령, 항암 과정, 고민과 힘든 점, 항암 가발 얘기까지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나면 함께 공원이나 숲을 걷기도 했다.
동생이나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알차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동생은 그들을 만나면서 웃음을 되찾고 암이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정기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준 덕분에 우리는 마치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처럼 끈끈해졌다.
카페를 개설한 지 1년쯤 되자 회원이 눈에 띄게 늘어 100명가량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정기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10명에서 20명으로, 30명으로 점점 늘어났다. 동생과 나는 서로 아픔을 나누고 희망까지 공유하는, 보다 더 건강한 모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환우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굴을 맞대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특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할 사람들인 만큼 이왕이면 체육활동을 통해 건강관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암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습관은 운동이지만, 동생의 경우를 봐도 항암치료 등으로 지친 암환자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운동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회원들에게 정기 모임 이외에 틈틈이 모여서 함께 운동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모두들 대찬성이었다. 회원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누구나 쉽고 즐겁게 따라할 수 있는 에어로빅 교실을 기획하게 되었다. 에어로빅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환우 가족 중 한명이 선뜻 수업을 진행해주겠다고 한 덕분에 계획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회원 중 한 분의 남편이 큰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한 달에 두 번씩 체육관을 빌려 쓸 수 있었다.
우리는 정기모임 이외에 매월 두 번째, 네 번째 토요일 날 오전 10시까지 체육관에 모여 2시간 동안 신나게 에어로빅을 즐겼다. 처음엔 몸을 쭈뼛거리며 주변을 신경 쓰던 회원들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에어로빅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다들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동생 또한 마찬가지로 보였다. 긴 시간 암세포의 노예가 되고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겪으며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회원은 한명도 없었다. 몸이 축 쳐져 있다가도 여러 사람이 지르는 함성 소리와 힘찬 웃음소리에 자신에 모르게 휩쓸려 몸을 흔들어댔다. 회원들 각자가 내뿜는 밝은 에너지 덕분이었다.
운동 효과가 생각보다 좋다고 느꼈는지, 에어로빅 활동 횟수를 좀 더 늘리자는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조금씩 돈을 모아서 정식으로 체육관을 임대하고 에어로빅 강사분을 초빙해 일주일에 세 번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에어로빅 활동이 있는 날이면 체육관 안은 매번 회원들과 그 가족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에너지, 그 자체였다. 그 속에서 함께 웃고 몸을 흔들면 저절로 흥이 솟아났다.
그들과 동생은 가슴 안에 드리운 암세포의 무게를 떨쳐내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운동을 했다. 1년 넘게 에어로빅을 하면서 동생을 비롯해 회원 대부분이 눈에 띄게 체력이 향상되었다. 암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유쾌하고 긍정적인 표정들이었다.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운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고난은 우리를 현실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큰 힘을 내게 해 두 발로 우뚝 서게도 만든다. 회원들과 함께 한 에어로빅 활동은 동생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다시금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은 지금, 동생은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며 집근처 헬스클럽에서 에어로빅을 하고 있다. 동생은 재발 없이 자신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모두 에어로빅 덕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암 투병을 하는 동생을 옆에서 지켜보며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아무리 건강을 자신하더라도 일주일에 세 번, 한번에 30분 이상씩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꾸준히만 운동하면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릴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실제 에어로빅 활동을 함께 한 환우들 상당수가 발병 전에는 운동하는 걸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이었던 걸 보면 운동과 질병의 발병 간에는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큰 병에 걸렸다고 해서 앞날을 너무 절망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병을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면 치료 효과도 훨씬 높일 수 있다. 에어로빅 활동을 함께 한 환우들 중 대부분은 동생처럼 완치돼서 건강을 되찾은 경우가 많다. 매일 하루에 30분~60분씩만 시간을 내서 몸을 움직여주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귀찮다는 핑계로 운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저런 핑계들로 운동을 미루는 사이 몸속에서는 각종 병이 자라고, 삶과 행복을 집어삼킬 만큼 위협적인 존재로 커지게 되는 것이다.
백세시대를 맞아 무병장수는 누구나 꿈꾸는 인생의 목표와도 같다. 하지만 철저한 관리와 예방이 따르지 않고는 누구나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인 운동과 다양한 생활체육 활동을 통해 무병장수 하는 백세시대를 열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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