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의 이유

몇 년의 시간 동안 ‘외로움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애써왔다. 지난 내 생일 자정을 넘기고도 한참을 못 자던 날, 차를 끌고 제주도로 가기 위해 완도로 무작정 떠나기도 했고, 무더운 여름날 혼자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초반의 여유가 늘 외로움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테니스장에서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유난히 추운 1월 날씨 탓에 실내에서 진행하는 그룹 레슨을 오랜만에 신청하였다. 초행길이라 길을 헤매는 바람에 20분 남짓 늦었다. 쭈뼛쭈뼛 레슨장에 들어섰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있기도 했고, 낯선 남자에 대한 내 관심이 혹여라도 티가 나 보일까봐였다. 가끔 서브에 대해 코치와 나누는 대화에서 들었던 중저음의 목소리와 젊게 입은 옷차림에서 나보다 10살 남짓은 어려 보인다는 첫 이미지만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처음 보는 이에게 말을 먼저 거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건 관심이 가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관심 없는 듯 테니스 레슨에 집중하는 척 하던 와중에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대충 가지고 있던 테니스 라켓에 관한 대화였다. 마침 서로 같은 라켓을 가지고 있어 첫 대화로 어색함이 없었다. 그 찰나에 마스크 너머 그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다. 하얀 피부에 속 쌍커플이 있는 크지 않는 눈이었고 콧대가 높았다. 예상치 못한 잘생김에 순간 설레버린 내가 철이 없게 느껴졌다. 대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나와 그의 레슨 차례가 늦게 오길 바라고 있었다.
마침내 레슨이 끝나고 다함께 하는 식사 장소로 자연스럽게 둘만 걷고 있었다. 분명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씨였음에도 가는 길이 내심 오래 걸리기를 바랬던 것을 보면 첫 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이가 혹시 어떻게 되세요?”라는 그의 질문에 내 나이가 그에 비해 지나치게 많게 느껴질까봐, 애써 나이를 숫자로 말하는 대신 태어난 해로 대답해버렸다. 그는 적지 않게 놀랐는지 “아,,”라는 단답 이후 정적이 흘렀다. “하하, 제가 뭐 실수한거 아니죠?”라는 말로 어색한 분위기를 달래보려는 나였다.
그 이후 매주 돌아오는 테니스 치는 주말이 기다려졌다. 테니스가 치고 싶은 건지, 테니스를 그와 함께 치고 싶었는지. 후자의 마음이 더 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나 혼자 아닌 척을 해 보았다. 몇 번의 평일, 사적인 테니스 랠리로 우리는 부쩍 친해졌고 그는 지금 내 남편이 되었다. 오늘도 치열한 테니스 코트 예약을 해보겠다고 둘이 같이 알람을 맞춰놓고 나란히 마우스 클릭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난다. 지난 추운 겨울의 설렘을 평생 기억하며 평생 나랑 테니스 치며 재미있게 살자 남편!